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새로운 세대론을 기다리며

입력
2016.02.04 10:59
0 0

세대론은 한국 사회의 징후와 특정 연령층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는 데 자주 동원된다.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에 무심하고 세대론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들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지나친 일반화라는 비판이 따르지만, 한 세대를 단어 몇 개로 간단히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세대론의 장점이다. 10년 단위로 각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한국 사회가 얼마나 급격히 바뀌어왔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얼마 전 70년대 중반에 태어나 90년대에 대학을 다닌 필자가 속한 세대를 20대들이 ‘포삼’세대로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널리 유통되는 삼포세대에 비해 낯설게 들릴 수도 있는 포삼은 포스트-386의 준말이다. 처음 이 단어를 접하자마자 도처에서 쓰이는 접두어 ‘포스트’가 당사자들에게 어떤 뉘앙스로 다가오는지를 깨달았다. 앞 세대에 기대어 자신들이 호칭되는 것에 대한 묘한 양가감정이 들었다. 거리를 두고 극복하고 싶지만(포삼으로 불리기 싫다고 항변하고 싶지만)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는(못함을 인정해야 하는) 우리 세대가 느낄 법한 낭패감일 것이다. 이는 기생할 수밖에 없는 ‘포스트’의 운명이다. 20여년 전 시대를 풍미했던 일군의 이론가, 비평가, 철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불렸다. 그러나 역시 당사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자신은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라고 부인하려 했다. ‘포스트’는 남한테는 쉽게 붙여도 자신에게는 붙이기 싫은 레테르인 것이다.

어느 세대도 자신들의 고유한 특성에서 도출되지 않고 다른 세대에 빗대어 호명되는 것에 만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70년대생들은 그들이 청춘이었던 90년대에는 다른 이름이 있었다. 기억에서 흐릿해진 X세대다. 그러나 X세대의 특징이라고 거론된 ‘자유분방함’이나 ‘신세대’ 등은 젊음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다. 말하자면 70년대생들은 4ㆍ19세대나 유신세대, 386 같은 온전한 이름을 얻지 못했다가, 이제 단순히 386 다음 세대로 정리되는 셈이다. 혁명을 자신들의 손으로 성취했고, 독재 권력의 가혹한 폭력에 맞서 싸웠으며, ‘진정성’의 사도로 민주화를 이끌어냈다는 영예로운 훈장은 70년대 이후 세대의 몫이 아니다. 그러나 포삼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그 이후 세대는 부정적인 딱지 일색이다. 88만원 세대, 삼포 세대, 달관 세대, N세대 등. 이 모두는 기성 세대가 ‘정규직-중산층-가족-지속적 경제 성장-가부장’이라는 신화에 기대어 젊은 세대를 묘사하는 수사들이다.

포삼이 흥미로운 점은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 붙인 거의 처음이자 유일한 이름이라는 점이다. 폭발적인 경제 성장 속도와 맞먹는 추세로 사회의 역동성이 감소하고 인구 감소와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세대 간의 갈등 역시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세대론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대론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더 도처에서 들려야 한다. 나이듦이 젊음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만큼이나 젊음이 나이듦을 진단하고 평가하는 일이 더 늘어야 한다. 수동적인 포기와 적극적인 선택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20대가 무엇을 포기했는지보다 무엇을 선택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더 생산적일 것이다. 무척 제한된 발언권을 가진 그들이 기성 세대를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수사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펼쳐나갈 때, 포삼과 386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말하는 입을 잠시 닫고 귀를 더 열 때다.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넘겨주지 못한다면 스스로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기성 세대가 청춘에게 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상징적 부친살해를 성공적으로 감행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는 첫 세대가 지금의 20대일지 모른다. 이삼십대를 중심으로 생겨날 더 많은 세대 담론을 기다려보자.

박정현 건축평론가ㆍ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