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을 원망하진 않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미안한 마음입니다. 제가 장남인데….”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3일 만난 김모(44)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떨궜다. 1992년 고교를 졸업한 김씨는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대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대 중반 ‘더 늦으면 공부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뒤늦게 학업에 매진, 96년 뛰어난 성적으로 서울 명문 Y대 신문방송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늦깎이 대학생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 초 동생이 하던 시계 사업이 망하면서 온 가족이 빚더미에 앉은 것. 그는 자신 명의로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동생에게 전달했지만 그에게 남은 건 빚 5,000만원과 ‘신용불량자’ 딱지뿐이었다. 결국 김씨는 휴학을 하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으나 휴학 기간이 길어지면서 대학 3학년이던 2003년 제적을 당했다. 졸업장이 없는 그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어 취업에도 실패했다. 제빵사 자격증을 따려고도 했지만 그마저도 잘 안됐다고 한다.
집을 나와 서울 시내 찜질방을 전전하던 김씨는 범죄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점심 시간이나 심야에 문이 잠겨 잠겨있지 않은 학과 사무실이나 동아리방에 침입해 물건을 훔치는 좀도둑으로 전락한 것이다. 김씨는 이런 수법으로 서울 시내 지하철 인근 대학 8곳을 돌며 전공서적과 지갑 등을 쓸어 담았다. 지난해 8월 중순부터 지난달 말까지 21차례에 걸쳐 훔친 금액은 1,100여 만원. 그는 훔친 전공서적을 청계천과 지하철 이대역 인근의 중고 서점에 팔았다. 보통 30권 정도를 한 번에 팔았는데 손에 쥔 돈은 3만~4만원이 고작이었다.
김씨의 대학털이는 현금과 서적을 도난 당한 K대 학생들이 경찰에 신고하며 막을 내렸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서울 시내 대학을 돌며 물품과 금품을 훔친 혐의(상습절도 및 야간건조물침입절도)로 김씨를 3일 구속했다.
조사결과 김씨는 앞서 동일 범죄로 처벌 받은 전력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실형을 선고 받고 1년 2개월을 복역했지만 2014년 10월 출소 뒤 같은 범행을 반복하다 검거됐다. 경찰 관계자는 “무직인 김씨는 가족과 연락도 끊은 채 찜질방을 전전했다”며 “대학 사무실이나 동아리방을 비울 때는 항상 문을 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확인, 통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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