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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 앞서 산바람 살짝…울진 덕구·신선계곡 트레킹

입력
2016.02.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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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만 하려고 여행을 떠나기는 왠지 주저된다. 아주 먼 곳이라면 더더욱. 경북 울진의 백암온천과 덕구온천은 물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겨우내 뻐근했던 근육을 풀기에는 뜨끈한 온천수만한 게 없다. 그 전에 짧은 트레킹으로 산바람이라도 쐬면 금상첨화다. 덕구온천의 덕구계곡과 백암온천 인근의 신선계곡은 온천욕을 즐기기 전 몸풀기로 적당한 트레킹 코스다.

덕구온천 원탕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울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덕구온천 원탕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고 있다. 울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원탕을 찾아서…온기가 모락모락 덕구계곡 트레킹

‘사냥꾼의 활과 창에 큰 상처를 입고 도망가던 멧돼지 한 마리가 어느 계곡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쏜살같이 사라졌다. 사냥꾼이 계곡을 살펴봤더니 온천수가 솟아나더라.’ 고려 말에 발견했다는 덕구온천에 얽힌 이야기다. 온천의 효험·효능이야 사람마다 다르고 자랑하기 나름인데, 눈에 띄는 대목은 ‘용출 온천수’다. 대부분 온천이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리는데 비해 이곳에선 온천수가 솟아오르는 원탕(源湯)을 볼 수 있다는 거다.

덕구계곡 트레킹 코스는 온천지구에서 원탕에 이르는 4km 구간 산책로다. 응봉산(해발 999m, 매봉산이라고도 한다) 등산로의 일부지만, 두어 차례 가파른 계단을 제외하면 경사가 완만해 산책로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원탕에서 온천지구로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가 계곡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원탕에서 온천지구로 뜨거운 물을 공급하는 파이프가 계곡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얼어붙은 계곡물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얼어붙은 계곡물이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원탕까지 가는 산책로에는 세계의 유명 다리를 본뜬 12개의 교량이 놓여있다. 사진은 경복궁 향원정의 취향교를 본뜬 다리.
원탕까지 가는 산책로에는 세계의 유명 다리를 본뜬 12개의 교량이 놓여있다. 사진은 경복궁 향원정의 취향교를 본뜬 다리.
원탕에는 42.4℃ 온천수가 불규칙적으로 퐁퐁 솟는다.
원탕에는 42.4℃ 온천수가 불규칙적으로 퐁퐁 솟는다.
원탕 옆에는 작은 족욕장도 만들었다.
원탕 옆에는 작은 족욕장도 만들었다.

덕구계곡 산책로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3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계곡 산책로와 나란히 연결된 대형 파이프다. 원탕에서부터 온천지구까지 온천수를 끌어오는 관이다. 세계의 유명 교량을 본뜬 12개의 다리도 볼 수 있다. 1번 금문교에서부터 호주의 하버교, 프랑스 노르망디교, 스페인 알라미요교 등 계곡을 건널 때마다 색다른 다리를 지난다. 실제 사진과 건설 공법 등에 대한 간단한 안내판도 함께 세웠다.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꽁꽁 얼어야 할 계곡물이 서서히 풀린다는 점이다. 초입에서 두꺼운 얼음장 밑으로 꿀렁꿀렁 거리던 물소리는 상류로 갈수록 가벼워지고, 원탕 부근에선 완전히 녹아 한겨울 추위가 무색해진다. 계곡자체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기운이 기분 탓만은 아닌 듯하다.

마지막 교량인 중국 장제이교(를 본뜬 다리)를 지나면 드디어 계곡 끝자락에 하얀 김이 피어 오르는 원탕이 보인다. 바닥에서 솟구치는 것은 아니고, 키 높이 정도의 돌탑에 작은 분출구를 만들었다. 불규칙적으로 퐁퐁 튀는 물줄기 주변으로 모락모락 온기가 퍼진다. 바로 옆에는 작은 족욕탕도 만들어 갓 흘러나오는 온천수에 발을 담글 수도 있다. 발 닦을 수건 하나쯤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

눈물나기·한숨제기…백암온천 넘어 신선계곡

신선계곡 호박소 위의 출렁다리. 신선계곡은 풍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신선계곡 호박소 위의 출렁다리. 신선계곡은 풍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신선계곡은 백암온천 뒤편 백암산(해발 1004m) 줄기에 감춰진 계곡이다. 등산로는 온천지구에서 영양 방면으로 고개를 하나 너머 선구리에서 시작된다. 계곡도 등산로도 덕구계곡에 비해 깊고 거칠다. 합수곡까지 6km 구간에 생태탐방로가 잘 닦여 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만만치 않다. 온천 가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대신 절반에 해당하는 호박소(약3.2km)까지는 약 2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주차장에서 1km 떨어진 폐광터까지는 평지나 마찬가지여서 순탄하다. 2000년까지 금은을 생산하던 광산이 있던 자리다. 폐광에서 유출되는 광해물질을 차단하기 위해 설치한 긴 옹벽에 금강소나무를 주제로 그린 벽화가 눈길을 잡는다. 계곡에 놀던 고라니가 들이받을 정도로 사실적이라 현대판 솔거 그림이라고 자랑하지만, 사시사철 푸른 담장은 아무리 봐도 고요한 겨울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탐방로는 잘 정비돼 있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만만치 않다.
탐방로는 잘 정비돼 있지만 오르막 내리막이 만만치 않다.
눈 위의 수달 발자국
눈 위의 수달 발자국
용소폭포엔 한겨울에도 얼음 밑으로 물소리가 요란하다.
용소폭포엔 한겨울에도 얼음 밑으로 물소리가 요란하다.

이곳부터 등산로는 조금씩 높아지고 계곡은 깊어진다. 참새도 넘다가 눈물 흘릴 정도라 ‘참새 눈물나기’, 다람쥐도 한달음에 못 오르고 한숨 쉬어간다는 ‘다람쥐 한숨제기’도 지난다. 대여섯은 몸을 숨길 수 있는 ‘도적바위’도 있다. 이 산중에 훔쳐갈 물건이 있을까 싶지만 합수곡엔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 이전까지 13가구가 살았다. 험준한 산길을 오가며 얼마 되지도 않는 곡식과 생필품을 바꿨을 화전민들을 상대로 도적질이야 했을까? 호사가들의 재기 넘치는 이름이겠다. 가파른 물줄기가 만들어낸 소(沼)도 여럿이다. 신선이 목욕했다는 신선탕, 가물 때마다 기우제를 지냈다는 용소, 명주실 한 꾸리를 풀어도 모자랄 정도라는 호박소 등엔 이 겨울에도 두꺼운 얼음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웅장하다.

신선계곡은 생태탐방로를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더러 알몸으로 목욕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고, 요즘도 가을 낙엽에 발이 빠질 만큼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다. 계곡을 찾은 날은 전날 밤 내린 진눈깨비가 바위를 하얗게 덮고 있었다. 나무에 쌓일 정도는 아니어서 아쉬움이 컸는데, 통상 2월에 눈이 많이 내린다니 그때는 고요한 설경을 기대할 수도 있겠다.

울진=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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