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효주(21ㆍ롯데)는 지난 1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2016시즌 개막전 퓨어실크 바하마 클래식 우승 인터뷰에서 동료인 호주동포 이민지(20ㆍ하나금융그룹)에게 통역을 맡겼다. LPGA에 발을 들여놓은 지 약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데 서툰 까닭이다.
골프 실력도 중요하지만, 미국 진출을 위해선 영어 구사능력이 필수다. 그러나 어렸을 때 미국에서 생활한 선수가 아닌 이상 한국 선수들 대부분은 ‘영어 울렁증’을 갖고 있다.
박세리(39ㆍ하나금융그룹)의 경기를 보고 자란 LPGA 2세대가 막 데뷔하기 시작할 무렵인 2006년 미국 스포츠전문매체 ESPN은 한국 선수들의 영어 실력 실태를 지적했다. 당시 매체는 “이번 시즌 LPGA 투어에서 뛰는 한국 선수는 총 32명이다. 그러나 영어로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꼬집었다.
LPGA는 이러한 점을 악용해 한국 선수들의 투어 입문을 어렵게 만든 적이 있다. LPGA 사무국은 2008년 영어 의무화 규정을 신설했다. 당시 열린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투어에서 영어 사용을 의무화하겠다. 2009년 말쯤 영어 구술평가를 실시해 통과하지 못한 선수는 2년간 투어 대회 출전을 정지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한국 선수들을 겨냥한 조치였다. 이 규정은 발표 후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인 최경주(46)는 물론이고 애니카 소렌스탐(46ㆍ스웨덴), 로레나 오초아(35ㆍ멕시코) 등 해외 여자 골퍼들도 잇따라 반대 목소리를 냈다. 뉴욕타임스 등 권위 있는 현지 언론들도 이 조치를 도마 위에 올려놨다. 결국 ‘인종 차별’이라는 비판 속에 영어 의무화 규정은 2주 만에 철회됐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다. 해외 선수가 투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현재 LPGA에서 원만한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역시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PGA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에게 가장 본보기가 되는 선수는 바로 지난 시즌 신인왕 김세영(23ㆍ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김세영은 투어 입문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영어 실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미국 골프전문매체 골프채널은 김세영의 신인왕 소감을 두고 “신인으로서 첫 우승 후 불과 10개월 만에 진정성 있는 인터뷰를 했다”고 극찬했다. 지난해 12월 ING생명 챔피언스 트로피 직후 LPGA팀의 박인비(28ㆍKB금융그룹)는 신지은(23ㆍ한화골프단)이 영어로 인터뷰하자 김세영에게 통역을 해달라는 말을 했다.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김세영의 영어 실력은 함께 투어에서 뛰고 있는 동료 선수들도 놀랄 정도다.
전인지(22ㆍ하이트진로)는 4일부터 열리는 LPGA 투어 코츠 챔피언십에 나선다. 투어 정식 멤버로서 출전하는 첫 대회다. 전인지는 최근 영어 편지를 쓰는 등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전인지는 올해 LPGA에 진출하는 29명의 신인 중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꼽힌다. 투어 정식 멤버로 첫 우승을 일군 후 그가 영어로 전할 소감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박종민 기자 mi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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