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요일이면 교회에 갔다가 형제 같은 친지를 찾아 보는 게 일과다. 내 친지는 몸이 불편해 휠체어로 이동을 해야만 한다. 바깥 바람도 쐬고, 간단한 외식을 하고 카페서 차 한잔 마시면서 앉았다 오는 게 지정코스다. 지난 일요일은 친지가 좋아했던 식당에 갔다. 오랜만에 가 보니, 성해서 다닐 때는 있는 줄 몰랐던 장애물이 있었다. 입구에 계단이 서너 개 놓여 있었는데 성한 몸일 때는 의식하지 못했었다. 늙은 나와 가녀린 간병인의 힘으로는 휠체어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지나던 젊은이 중 한 명에게 도움을 부탁을 했다. 부탁과 동시에 네댓 젊은이들이 동시에 달려와 버쩍 휠체어를 들어 올려주고, “맛있게 잡수세요” 마치 종달새가 노래하듯 외치고 가버리는 게 아닌가. 난 그들 젊음에,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한 친절과 인사에 잠시 황홀하기까지 했다.
들려 오는 뉴스들은 온통 사람이 살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버리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게 한다. 머잖아 나라 경제는 망할 것 같고, 전쟁은 임박한 듯 하다. 실제로 세상 어느 한 구석에는 그런 기미가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한 구석이 아닌 보다 넓은 세상은 그래도 조금씩 그리고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는 징표를 나는 볼 수 있다.
어제 휠체어를 버쩍 들어 주던 젊은이들만 세상에 있는 게 아니다. 어른들도 있다. 나는 노인들이 겪는 얘기로 글을 써 온 사람이다. 내가 쓴 글 중에서 사람들이 실감하고 동의하는 얘기 중 하나는 지하철 안의 노약자석 얘기였다. 고압적인 남성 노인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거나 실제로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면서 쓰러질 듯 다가오는 여성 노인을 볼 때, 나와 일행인 언니는 차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일반석 앞에 서 있자니, 마치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것 같아 민망한 맘이 든다. 하는 수 없이 지하철 안에서 우리 자매의 자리는 문 옆 밖에 없더라고 썼다. 지난 연말 한 일간지는 지하철 안에서 노약자석 자리를 차지하려는 추태에 가까운 실상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근간에 지하철을 타면, 신문에서 다뤘던 노약자석을 두고 벌어지는 이러저러한 저질스런 장면이 씻은 듯 사라진 느낌이다. 글쎄 내가 하루 종일 모든 구간의 지하철을 타 보지도 않고, 이리 얘기하는 게 경솔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 경험에 미뤄볼 때는 볼썽 사나운 장면은 없어지고, 묵묵히 차례대로 자리에 앉고 일어서는 질서가 형성돼 가고 있다.
주위에서 아무리 나쁜 소식이 들려와도, 세상은 업그레이드 돼 가고 있다. 줄기차게 나쁜 점을 지적하는 사람들 덕에 우리는 미처 몰랐던 일은 깨우치기도 하고, 조금씩 고쳐 나가기도 하는가 보다.
내 기억으로는 1998년 외환위기를 기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친절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큰 관청은 말할 것도 없고, 동회(지금의 주민센터)만 가도 공무원들의 태도가 고압적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너무 나긋나긋해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장사하는 분들은 어떤가. 그 시절, 백화점에서조차 물건을 본 후 사지 않고 나오려면, 뒤통수가 찔려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냥 나와도 찾아 주신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인사한다.
나쁜 습성을 고치는데도 ‘빨리 빨리’라는 민족성이 적용돼 빨리 빨리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나 같이 이름 없는 노인네가 외쳐대는 조그마한 목소리가 신문에 실리면서 사회 한 구석이 개선돼 가는 것 같아 나는 신이 난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라는 책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류는 점점 덜 잔인하고 덜 폭력적이며 더 평화로운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한다. 자선가로 변신한 세계 최고부자 빌 게이츠가 무인도에 가게 되면, 가져가고 싶은 책이란다.
제 자식을 때려 죽이고 굶기는 부모가 있는 세상에다 대고 무슨 헛소리냐고 한다면, 나는 거의 모든 세상은 자식을 잘 기르는 부모들 투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광애 노년전문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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