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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살고 싶어지는 연주” 조성진 콘서트 여운

입력
2016.02.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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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저녁 10시 40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앙코르 곡 폴로네이즈 6번 영웅 연주를 끝내고도 기립박수가 계속 이어지자 조성진(22)이 객석 구석구석을 향해 ‘90도 인사’를 시작합니다.

콘서트홀에서의 관객 전원 기립박수는 지난해 12월 30일 정명훈 전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베토벤 교향곡 협주곡 9번 합창 이후 한 달 여 만이었는데요, 5분 넘는 커튼콜에도 관객들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자 조성진이 2~6위 수상자들과 함께 두 차례 무대에 섰습니다. 제작진의 ‘꽃다발 증정식’에도 객석은 요지부동. 급기야 조성진이 홀로 다시 나와 악장 손목을 이끌고 퇴장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서야 2,500석 관객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뗐습니다. 귀국 다음 날 곧바로 이어진 두 차례 연주회는 오후 2시 공연 3시간 20분, 8시 공연 2시간 45분간 이어졌거든요. 퍼포먼스를 본 객석 곳곳에서 “조성진도 사람”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일 저녁 8시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쇼팽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에서 협주곡 1번을 열연하고 있다. 조성진은 이날 자신감에 찬 연주를 선사했다. 크레디아 제공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2일 저녁 8시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쇼팽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에서 협주곡 1번을 열연하고 있다. 조성진은 이날 자신감에 찬 연주를 선사했다. 크레디아 제공
수 차례 커튼콜 후 조성진과 다른 수상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래도 박수를 그치지 않자 악장 손목을 끌고 대기실로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크레디아 제공
수 차례 커튼콜 후 조성진과 다른 수상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그래도 박수를 그치지 않자 악장 손목을 끌고 대기실로 들어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크레디아 제공

이날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는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를 보였습니다. 기자가 도착한 오후 1시에 이미 콘서트 플래카드를 찍는 ‘언니들’로 예술의전당 앞 사거리가 장사진이었습니다. 몰려드는 손님으로 1층 카페 진동벨마저 동이 날 정도였습니다. 이때부터 콘서트홀 로비는 8시 공연이 끝난 11시까지 장장 10시간 동안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프로그램북, 앨범 구매자들로 매표소 앞에 ‘인간띠’가 형성되기도 했고, 이용객이 몰린 화장실에서 물이 끊기는(설비 고장으로 추정) 초유의 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쇼팽 콩쿠르 갈라콘서트는 알려진 것처럼 오후 8시 공연이 티켓오픈 50분만에, 추가된 2시 공연이 30분여만에 매진됐습니다. 예매자 상당수가 ‘클래식 팬 아닌 조성진 팬’일 거란 예상을 깨고 오후 2시 공연 관람객은 음악 전공 학생, 클래식 애호가들이 많았습니다. 차분하면서도 열띤 객석은 닷새 전 같은 곳에서 열린 시카고 심포니 내한공연 때보다도 훨씬 성숙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2시 공연을 찾은 직장인 한진화(32)씨는 “예술의전당, 서울시향 정기회원으로 두세 달에 한 번씩 연주회를 보지만 공연 관람을 위해 월차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전부터 조성진을 알고 있었지만 콩쿠르 이후 관심이 더 높아졌다”고 말했습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전예진(17)양 역시 “조성진은 전공생들 사이에서 콩쿠르 전부터 너무나 유명했던 분”이라며 “작품 해석, 표현 테크닉 등 모든 면이 워너비”라고 했습니다. “김선욱, 손열음 같은 젊은 연주자 앨범을 자주 듣고, 한두 달에 한 번씩 공연장을 찾는다”는 신수연(76)씨는 “조성진군의 실제 연주를 보고 싶어” 예술의전당에 왔습니다.

2일 저녁 8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를 앞두고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는 북새통을 이뤘다.
2일 저녁 8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를 앞두고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비는 북새통을 이뤘다.
2일 저녁 8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가 시작되고도 표를 구하지 못한 일부 팬들이 취소표를 구하기 위해 매표소에 줄을 서고 있다.
2일 저녁 8시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콘서트가 시작되고도 표를 구하지 못한 일부 팬들이 취소표를 구하기 위해 매표소에 줄을 서고 있다.

반면 오후 8시 공연에는 조성진 스승인 신수정 전 서울대 음대학장, 신 전 학장의 ‘수선화’ 멤버로 알려진 배우 윤여정씨, 클래식 애호가로 알려진 배우 강석우씨 부부 등 유명 인사와 콩쿠르 수상 후 조성진 열혈팬이 된 관객들이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이 가운데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공연장에 오고 싶어” 노란 저고리, 붉은 치마 한복을 입은 이미란(32ㆍ가명)씨는 “천신만고 끝에 취소표를 얻어”며 중국에서 한국을 찾았답니다. 콩쿠르 동영상을 보고 조성진 팬이 됐다는 이씨는 다른 조성진 팬들과 모여 30분 전부터 로비에서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후 8시 공연이 시작되자 미처 입장권을 구하지 못한 팬들은 대형 플래카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공연장 앞 화면으로 중계되는 연주로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올해 나란히 이화여대 피아노과에 입학한다는 유현재(19), 박지원(19), 최유진(19)양은 “먼발치에서 나마 조성진을 보고 싶다”며 공연장을 찾았는데 사인회가 없다는 소식을 듣고는 공연장 로비 모니터를 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수십 명의 사람들도 공연 30분이 지나도록 취소표를 기다리며 매표소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살고 싶어지는 연주였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관객은 공연이 끝난 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칭찬할 일, 기분 좋은 일이라곤 없는 팍팍한 현실이 조성진 열풍의 진짜 비결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일견 씁쓸해집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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