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1일(현지 시간) 지카 바이러스에 대해 ‘국제 공중보건 위기상황’을 선포하는 등 세계 각국이 감염 억제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지만, 한번 불붙은 바이러스 확산 추세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 특히 태국에서도 최근 첫 감염자가 확인되는 등 지역 감염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도 WHO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감염 경로를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어 공포가 더욱 확산되고 있다.
태국 보건당국은 2일 “22세 남성이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해외 여행 경험이 없는 이 남성은 지난달 24일 발열과 발진, 충혈 등 증세를 보여 병원에 입원했고, 혈액 샘플 테스트를 통해 확진 판정을 받았다. 다만 그는 치료 후 이틀만에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과거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던 태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아시아 지역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들 국가는 앞다퉈 방역 계획 및 바이러스 진단 활동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긴급 대책을 발표하는 한편, 바이러스 전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2012~2014년 7건의 감염 사례가 있었고, 필리핀과 말레이시아, 캄보디아에서는 2010년 이후 각 1건씩 감염 사실이 확인됐다.
비교적 습도가 높은 중국 남부 해안 지역에서도 지카 바이러스 매개체인 이집트 숲 모기가 서식하고 있어, “겨울이 지나 기온이 오르면 이 지역에도 바이러스가 유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이미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약을 개발한 중국 당국은 보건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바이러스 진단과 치료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최근 “이미 지난해 초부터 지카 바이러스가 전파돼 있었다”는 정황이 나왔다. 인도네시아 보건당국은 “수마트라 섬에 거주하며 외국 여행 경험이 없는 27세 남성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라며 “뎅기열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의 생체 표본을 모아 분석하다 우연히 이 남성의 증상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남성의 표본 검출이 이뤄진 지난해 초 지카바이러스가 인도네시아에서 일시적으로 유행했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무차별적인 벌목 등 환경 파괴행위가 지카바이러스 확산의 주범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숲이 사라지면서 이집트 숲 모기가 주거지역으로 대거 몰려왔다”라고 지적했다.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 마구잡이 벌목이 성행하면서 숲은 줄어든 반면, 도시에는 오염된 환경이 조성되면서 이집트 숲 모기가 급속히 퍼졌다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대학 신종병원균연구소 에이미 비터 교수는 “원래 이런 종류의 바이러스는 모기-동물 간 ‘닫힌 사이클’ 안에서만 확산된다”라며 “하지만 모기의 서식 환경이 파괴되면서 이러한 바이러스 확산 영역의 한계가 무너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벌목 이후 진행되는 경작지 조성이 모기 서식에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조지워싱턴대학 앨리슨 고트월트 박사는 “벌목은 종종 모기와 같은 질병 매개체가 쉽게 번식해 전염성 질병을 퍼뜨리는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실제 지카 바이러스 유행 경로를 살펴보면, 이러한 분석에 더욱 힘이 실린다. 지카 바이러스는 1947년 아프리카 우간다 지카 숲의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남미에서는 지카 바이러스 매개체인 이집트 숲 모기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1970년대 도시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정부 차원의 모기 퇴치 운동이 시들해지면서 인구 밀집 지역에 모기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인디펜던트는 “이집트 숲 모기가 도심의 인공적인 물웅덩이에서 쉽게 번식하면서 지카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환경이 완성됐다”고 분석했다.
강주형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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