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인(36)은 왼쪽 귀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어릴 적 갑자기 소리가 안 들려 병원에 갔다가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청력상실 진단을 받았다. 고작 일곱 살 때였다. 그는 녹음을 할 때 프로듀서나 음향 엔지니어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인다. 악기 소리를 양쪽 귀로 입체적으로 듣지 못하다 보니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소리의 공간감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정인이 가수 윤건과 손잡고 다시 한번 스스로의 벽을 넘었다. 윤건을 프로듀서로 만나 1년 넘게 갈피를 잡지 못했던 솔로 앨범 작업의 물꼬를 텄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지난달 28일 발매된 앨범 ‘레어(rare)’다. 2013년 10월 낸 ‘가을 여자’ 이후 2년 3개월여 만이다. 최근 한국일보를 찾은 정인은 “새로운 나를 찾은 작업”이라고 앨범 제작 뒷얘기를 털어놨다.
“소속사 사장이기도 한 개리(리쌍) 오빠에게 홀로 작업한 곡을 들려줄 때마다 퇴짜를 맞았죠. 새롭지 않다고요. 이 때 지인이 소개해 준 윤건 오빠를 구원투수처럼 만나 길을 찾은 거죠.”
정인과 윤건은 “담백한 앨범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세월을 타지 않고 오래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자는 취지다. 앨범 타이틀곡 ‘유유유(UUU)’도 단출한 피아노 연주 위주로 곡을 꾸렸다. 정인 하면 떠오르는 소울풀한 가창과 기교도 최대한 줄여 여백을 뒀다.
인상적인 곡은 ‘비틀비틀’ 이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의 연주에 물 흐르듯 노래하는 정인의 목소리가 따뜻하다. 정인이 노래하고, 그의 남편이자 기타리스트인 조정치가 편곡한 곡이다. 정인은 “(조)정치 오빠는 평소에 일하는 것 안 좋아하고 음악적으로 서로 성향이 잘 맞지 않는다”고 농담을 하면서도 “그래도 의심의 여지 없이 음악적으론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남편을 챙겼다. 왼쪽 귀가 안 들리는 그를 위해 항상 오른쪽에서 말을 건네는 남편의 살뜰함도 슬쩍 자랑한다. 2013년 결혼 후 처음으로 낸 정인의 앨범에서 두 사람은 ‘비틀비틀’ 녹음을 함께 했다.
정인은 스스로 “밝은 게 콤플렉스일 정도”라고 말할 만큼 그늘이 없다. 한쪽 청력을 잃은 뒤에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고, 고등학생 때인 1990년대 후반 가입한 PC통신 흑인음악동호회에서 직접 공연을 꾸리는 등 매사에 적극적이었다. 2001년 밴드 지플라의 보컬로 데뷔해 2002년 리쌍 1집 수록곡 ‘러쉬’ 피처링으로 이름을 알린 정인은 지난 15년의 활동을 “비틀거렸지만 나를 찾아간 시간”이라고 말했다. 직접 가사를 쓴 ‘비틀비틀’ 에서 ‘비틀 걸어도 미끄러져 굴러도 흘러갈래 이대로 뭐 어때’라며 희망을 노래한 이유다.
“완성형이 돼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바람요? 누군가 제 음악을 듣고 제가 전하고픈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가수로서 행복이 아닐까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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