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태용/사진=연합뉴스.
불현듯 청문회가 떠올랐다. 지난달 31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태용(46)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은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죄송하다", "핑계지만"과 같이 청문회에서나 나올법한 말들을 쏟아냈다.
올림픽 대표팀은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을 통해 세계 최초로 8연속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했다. 신태용호가 한국 축구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수장인 신 감독은 고개를 숙였다. 대회 결승에서 숙적 일본에 2-3 통한의 역전패를 당한 탓이다. 일본전서 후반 초반까지 2-0으로 앞서나간 한국은 너무 일찌감치 축배를 들었다. 방심한 선수들은 경기 막판 일본에 3골을 얻어맞으며 다잡은 우승을 날렸다. 이기고 있을 때도 고삐를 늦추지 않아야 하는 법. 신태용호는 한일전을 통해 이러한 교훈을 얻었다. 물론 지나치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 보완할 점은 선명하게 드러났지만, 올림픽 본선 진출도 커다란 성과인 것만은 사실이다. 당초 한국은 AFC U-23 챔피언십에 임하면서 대회 우승보다는 3위 이내 들어 리우 올림픽 본선행을 확정하는 그림을 그렸다.
한국 축구는 불과 4일 만에 희비가 교차했다. 카타르를 꺾으며 올림픽행을 확정한 지난달 27일과 한일전서 패한 31일 신태용호를 바라보는 시선은 확연히 달랐다.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쏠림 현상이 올림픽 대표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쏠림 현상의 대표적인 예를 들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레밍 효과'다. 레밍이라는 동물은 좋지 않은 시력 탓에 집단 내 선두를 맹목적으로 쫓아가는 경우가 많은 데 선두가 실수로 벼랑에서 떨어지면 다른 이들도 모두 추락사하곤 한다. 축구에 대입하자면 여론의 방향이 지나치게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을 말한다.
거스 히딩크(70)나 홍명보(47) 전 대표팀 감독의 경우를 봐도 잘 알 수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전까지만 해도 히딩크 감독을 향한 의구심의 눈초리는 많았다. 2001년 국제축구연맹(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히딩크호는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진 프랑스에 0-5 참패를 당했다. 체코와 평가전서도 0-5로 진 히딩크호는 숱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듬해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쏘아 올리며 한국 축구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했다.
당시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홍명보는 2013년 6월 대표팀 감독 지휘봉을 잡은 지 불과 1년 만에 한국 축구의 역적으로 몰렸다. 브라질 월드컵 전까지 평가전 등에서 소기의 성과를 내던 그는 정작 월드컵에서 1무2패의 초라한 성적을 받아 들고 곧바로 사퇴했다. 귀국 후 자진 사퇴 기자회견을 열었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쫓기듯 경질되는 모양새였다. 결과적으로 봤을 땐 경질될 만도 했지만, 대표팀의 전력을 끌어올릴 시간이 부족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인터넷 여론은 당시 홍 감독을 '마녀사냥'하다시피 했고, 홍 감독은 졸지에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했다.
이 같이 지나치게 일희일비하는 여론은 오히려 축구 발전을 저해한다는 분석이다. 보완할 점은 지적하되, 단기간 결과만 보고 마녀사냥식으로 몰아세우는 것은 옳지 않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그 동안 이러한 이유에서 '독이 든 성배'였다. 신 감독과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진심 어린 시선이 필요하다. 냄비처럼 달아올랐다가 식는 여론보다는 잔잔하면서도 진정성 담긴 조언들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밝힌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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