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필자들이 문예창작과 수업을 듣는다면 이들의 점수는 어떨까. 영국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에 따르면 아마도 좋은 점수는 받지 못할 것이다. 성경은 예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필자들은 그의 내면을 탐구하는 데는 거의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예수는 신이 인간의 죄를 속죄한다는 거대한 서사에 복무하는 인물에 불과하며, 필자들은 그의 고뇌나 망설임을 십자가에 달리기 전 밤새 기도하는 모습 하나로 끝내버린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주제 사라마구가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신이 예수의 인간적 욕망을 짓밟는 ‘예수복음’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테리 이글턴의 문학 강의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책읽는수요일ㆍ이미애 옮김)이 출간됐다.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비평가이자 이론가,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평론가로 꼽히는 이글턴은 문학과 문화, 정치, 철학 등에 걸쳐 40여권의 책을 쓴 저자다. 모든 이론이나 비평은 언제나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된다는 그의 입장은 늘 독자들 간의 난상토론을 부추긴다.
이번 책은 이글턴의 대표작이자 베스트셀러 ‘문학이론입문’(1983) 이후 거의 30년 만에 나온 문학 이론서다. 먼저 나온 책이 문학전공자들의 필독서로 꼽히며 꾸준히 읽혀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들이 접근하기에 난이도가 높았다면, 이번 책은 전문용어를 아예 배제하거나 쓰더라도 자세한 설명을 곁들이는 등 이례적으로 대중적이다. 그는 ‘비평가의 임무’라는 책에서 “급진적 지식인은 더 넓은 지지층을 끌어내야 할 의무, 혹은 적어도 자신의 지지층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는데, 그 의무감이 기탄없이 발휘된 셈이다.
책에는 셰익스피어 ‘맥베스’ ‘오셀로’,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토머스 하디 ‘무명의 주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허먼 멜빌 ‘모비딕’,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J.K 롤링 ‘해리 포터’ 등 광범위한 작가와 작품들이 등장한다. 저자는 문학 작품을 훌륭하게 혹은 형편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독자는 작품을 어디까지 자유롭게 해석할 수 있는지,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설득시키기 위해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에 대해 흥미로운 지점들을 짚어낸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은 섬에 표류한 소년들이 편을 갈라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근본적 야만성을 들춰낸다. 그러나 이들이 만약 제대로 교육된 성인이었다면? 공동체 생활에 잔뼈가 굵어 내면의 악을 감출 능력이 있었다면? 저자는 작가가 야만성을 말하기 위해 너무 쉬운 방법을 택했으며 “이런 견해는 사회적 진보에 대한 모든 희망을 효과적으로 좌절시킨다”고 말한다.
대중 독자에 눈높이를 맞춘 배경에는 책 읽는 인구가 감소하는 것에 대한 이글턴의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그는 프롤로그에서 “니체가 ‘슬로 리딩(slow reading)’이라고 부른 책 읽기의 전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위험”에 놓여있다며 이 책을 통해 “문학의 형식과 기법에 세밀한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그 전통을 되살려내는 데 미미하게나마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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