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 바이러스 확산에 떠는 임신부들
메르스 학습 효과 동남아 여행 꺼려
SNS 잘못된 정보도 혼란 부추겨
출산 예정일을 4주 가량 남겨둔 만삭의 임신부 장민지(36)씨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신생아의 소두증(小頭症)을 유발하는 ‘지카 바이러스’가 남미를 넘어 태국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까지 번졌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가 두려움을 느끼는 데는 임신 초기였던 지난해 여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악몽도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다.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아기를 가진 장씨는 메르스가 엄습하자 혹시나 하는 걱정에 무더운 여름날 집에서 두문불출해야 했다. 장씨는 “메르스 사태 때 임신부는 약도 못쓴다고 해서 외출도 자제했는데 이번엔 하필 태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라고 하니 너무 불안하다”고 하소연 했다.
중남미에서 시작된 지카 바이러스가 동남아 등 전 세계로 퍼질 기미를 보이면서 국내에서도 임신부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커지고 있다. 6월 둘째를 출산하는 손모(33)씨는 “메르스 당시 보건당국의 허술했던 방역체계 때문에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가래로도 못 막았다”며 “지카 바이러스도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에 임신부들은 더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에서 신혼이나 태교여행지로 인기가 높은 태국과 몰디브, 멕시코 칸쿤 등이 지카 바이러스 발생 지역으로 알려지면서 임신부뿐 아니라 가임기 여성들의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다음달 결혼식을 올리고 태국 파타야로 신혼여행을 준비 중이던 예비신부 오모(29)씨는 태국에서도 지카 바이러스가 발병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민에 빠졌다. 임신 11주차인 오씨는 “지카 바이러스가 신생아에 치명적인 소두증을 유발한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친정과 시댁 모두 태국 신혼여행을 만류해 행선지를 국내로 바꾸려 한다”고 했다.
다음달 중순 필리핀 팔라완섬으로 태교여행을 계획했던 23주차 임신부 현모(31)씨도 지난달 28일 100만원 가량의 수수료를 물며 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취소했다. 필리핀은 질병관리본부가 여행 자제를 권고한 25개 지카 바이러스 발생국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감염 의심 사례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현씨는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동남아까지 퍼진 상황에서 인접한 필리핀으로 여행을 갈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여행사 관계자도 “지카 바이러스 보도 후 신혼여행지 변경 취소 문의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임신ㆍ육아 전문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지카 바이러스와 관련한 잘못된 정보가 공유되면서 임신부들의 혼란도 부추기고 있다. 해당 사이트 등을 검색해 보면‘유아용 모기 기피제를 바르고 긴 팔을 입으면 괜찮다’는 조언부터 ‘공기 중이나 일상적 접촉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거나 ‘잠복기가 2년’이라는 근거 없는 얘기들이 적지 않게 올라와 있어 보건 당국의 정확한 정보 공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러스 전문가 김정기 고려대 약대 교수는 “지카 바이러스는 호흡기가 아닌 혈액을 통해 직접 감염돼 사전에 막기 까다롭다”며 “당장은 치료제가 없는 만큼 임신부들은 가급적 여행을 자제하고 모기와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허경주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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