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0년대 알래스카 북서부 외딴 항구도시 놈(Nome)은 백인들의 골드러시로 인구가 10배 가까이 급증, 1924년 무렵에는 5만 명이 북적거렸다. 그 해 12월 토박이 이누이트 족 두 살 소년이 디프테리아에 감염됐다. 그들에겐 저 세균성 전염병에 대한 내성이 없었고, 현지에는 면역혈청도 치료제도 없었다. 항공편도 여의치 않았고, 철도도 연결되기 전이었다. 병은 빠르게 번져 사망자가 속출했다.
혈청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개 썰매였다. 앵커리지의 혈청이 철도로 네나나(Nenana)까지 옮겨졌다. 1925년 1월 27일 밤 11시, 9마리 말라뮤트가 끄는 빌 새넌의 썰매가 출발했다. 영하 42도, 놈까지의 거리 1,085km. 20명의 머셔(musherㆍ썰매꾼)가 150여 마리의 썰매개로 이어 달리며 혈청을 운반하는 대장정 ‘혈청 릴레이(Serum run)’가 그렇게 시작됐다. 시베리안 허스키 ‘발토(Balto)’가 선도한 군나르 카센(Gunnar Kaasen)의 썰매가 놈에 도착한 것은 닷새 뒤인 2월 2일 새벽 5시 30분. 고립된 죽음의 도시에 그렇게 생명이 전해졌다.
머셔와 그들의 썰매 개들(물론 다수가 희생됐지만)은 모두 영웅이었다. 그 중에서도 카센과 발토 콤비는, 마지막 주자이기도 했지만, 열악한 상황에서 그들의 임무 구간(51.5km)보다 더 먼 길(총 85km)을 달려 주목 받았다. 대기 중이던 마지막 주자 에드 론(Ed Rohn)은 눈폭풍에 카센의 썰매가 늦어질 것으로 예상해 잠이 들었고, 카센은 그를 깨우지 않고 내처 달린 거였다. 발토와 썰매팀에 대한 신뢰, 교대ㆍ지체 시간 없이 한시라도 빨리 혈청을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카센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 것일 뿐, 정말 영웅은 1월 31일 146km를 달린 레온하드 세팔라(Leonhard Seppala)와 그의 선도견 토고(Togoㆍ시베리안 허스키)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어쨌건 그 해 뉴욕 센트럴파크에는 발토의 동상이 섰다.

세상에서 가장 혹독한 경기로 알려진 이디타로드(Iditarod) 개썰매 경주가 1973년 시작됐다. 철도가 생겼고 스노모빌이 상용화됐지만 개썰매의 전통과 로망, 특히 1925년 ‘혈청 릴레이’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였다. 대회 매년 3월 네나나~놈이 아니라 앵커리지~놈 구간에서 치러진다. 그 사이 몇 차례 경로가 바뀌었고, 거리도 1,690~ 1,850km로 제각각이지만 대회 공식 거리는 1,688km(1,049마일). 알래스카의 미국 49번째 주 승격을 기념하자는 의미다. 대회는 동물권 논란 속에 매년 치러지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