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마침내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에 온 세계가 흥분하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데요. 북한에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거리에서 몰래카메라식 TV 인터뷰에 응한 미국 소녀는 이렇게 반응했다. “축하해요, 북한. 마침내 그럴 때가 된 거죠.” 다시 한 남성에게 물었다. “북한에게 응원 한 마디 해주시겠어요?” 그러자 “진정으로 믿으면 언젠가 꿈은 이뤄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도 “축하해요, 김정은. 지금까지 잘 했어요. 계속 노력하세요” 같은 미국 시민들의 덕담이 이어졌다.
지난 1월 6일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인터넷 등에서 화제가 된 미국 abc 방송 프로그램 중 일부다. 북한이 어디 있는지도, 북한 핵실험이 어떤 의미인지도 잘 모르는 미국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코미디 같긴 했지만 이 동영상을 보는 내내 씁쓸한 실소만 이어졌다. 미군 B-52 전략폭격기가 출격하고 전방 군인들 휴가도 취소되는 등 마치 전쟁이라도 날 것처럼 떠들던 한국 상황과 너무도 대비됐기 때문이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 사람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북한 핵실험의 위급함을 몰라주는 미국 사람들 손가락질만 할 일도 아니다. 우리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어서다.
4차 핵실험 직후 사내 인사로 외교안보 담당에서 국내 사건사고 담당으로 업무가 바뀐 지 2주 정도 지났다. 그 사이 북핵 이슈는 또 우리 관심에서 저 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다. 외교안보 당국자나 전문가, 담당 기자 정도를 제외하면 이 문제는 한 달도 안 돼 이미 관심권 밖이다. 지난 1~3차 핵실험 때처럼 정부 대응이라는 게 ‘시작은 창대한 척 할지 몰라도 끝은 미약할 게 분명하다’는 점을 이제는 국민들이 모두 간파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북한을 응징하고 핵개발을 중단시킬 것처럼 떠들지만 결국 제어를 못해 북한은 다시 미사일 쏘고 5차 핵실험에 나서는, 통속극처럼 뻔한 결말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걸 이미 눈치챈 것이다.
상황을 이리 허무하게 만든 건 누가 뭐래도 박근혜 정부의 우왕좌왕 대북정책이다. 지난해 초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미국이 북미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풀어보겠다며 나섰을 때 한국 정부는 이를 가로막았다는 게 정설이다. 대신 남북대화로 핵 문제를 풀겠다고 했지만 김정은과는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 없었다.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싫고 그냥 기다리다 김정은 정권 붕괴로 북한을 흡수하겠다는 망상뿐이었던 것이다. 대통령은 ‘통일대박’이라 했지만 통일해야 할 상대를 끌어들이지도, 그렇다고 쓰러뜨리지도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한 셈이다.
이 정부의 또다른 실책은 마땅한 압박 카드도, 움직일 지렛대도 없으면서 북한을 방치했다는 점이다. 능동적이니 총체적이니 수사는 화려했지만 목표와 수단이 혼재되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면서 대북정책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출범 초부터 대북 경제협력이나 지원은 생각지도 않는 바람에 ‘핵실험 시 지원을 끊겠다’ 같은 정책 압박 수단 하나 마련 못했다. 기껏 압박 카드라고 내놓은 게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였다. 그런데 일부 전방 북한 군인을 제외하곤 별다른 효과도 없는 확성기 방송으로 북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건 순진하거나 무지한 발상이다.
다급히 한중관계를 활용해 보겠다고 했지만 이제 게도 구럭도 모두 잃게 생겼다. 한미일 군사 동맹 강화책을 성급하게 강조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와 5자회담 카드를 엉뚱하게 꺼내는 바람에 중국만 부글부글 끓어 오른 상태다.
이 정부 임기 다할 때 대북정책 묘비 명에 ‘갈팡질팡하다 이럴 줄 알았지’라는 글이 새겨질 게 분명해졌다. 감당할 능력도 안 되면서 북한을 무너뜨리겠다는 증오심만 가득했던 박근혜정부식 대북정책의 비극적 말로가 눈 앞에 빤히 다가오고 있다.
정상원 사회부기자 ornot@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