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단계 걸친 다단계·순환 출자 통해 그룹 지배
공정위, 허위 자료 제출한 신 총괄회장 등 제재 절차 착수
신격호 총괄회장을 비롯한 롯데그룹 총수일가는 2.4%의 지분만으로 그룹의 국내외 계열사를 지배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광윤사, 롯데홀딩스 등 일본 계열사를 정점으로 무려 20단계가 넘는 다단계 출자, 그리고 얽히고 설킨 순환ㆍ상호출자로 국내외 계열사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폐쇄적 경영구조를 십분 활용한 결과다. 특히 그룹을 좌지우지하는 황제형 총수로 군림해온 신 총괄회장의 지분은 단 0.1%에 불과했다.
0.1%로 롯데 지배 어떻게 가능했나
공정거래위원회는 1일 ‘기업집단 롯데 해외계열사 소유 등 현황’을 통해 그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민낯’을 낱낱이 공개했다. 공정위는 신 총괄회장의 첫째 아들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둘째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간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뒤 롯데로부터 총수일가의 해외계열사 주식 보유 자료를 넘겨 받아 지난 6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해 왔다.
롯데의 지배구조는 기본적으로 ‘총수일가→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롯데쇼핑’의 뼈대 위에 순환출자 등 계열사를 이용한 다단계 출자 방식으로 살을 입힌 것으로 요약된다. 총수일가가 직간접적으로 지배해온 해외계열사는 일본 36개사, 스위스 1개사 등 총 37개사. 이중 총수일가가 90% 가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광윤사와 계열사인 롯데그린서비스 등을 통해 롯데홀딩스를 비롯한 해외계열사를 지배하고, 롯데홀딩스는 다시 계열사인 11개 L투자회사 등과 함께 국내 롯데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호텔롯데 등 국내 계열사를 직접 장악해왔다. 호텔롯데의 경우 롯데홀딩스와 L투자회사 등 일본 계열가 보유한 지분이 무려 99.3%에 달한다. 특히 국내 86개 계열사의 경우 총자본금(4조3,708억원) 중 해외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이 22.7%(액면가 기준 9,899억원)에 달할 정도다. 일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구조라는 얘기다.
계열사간 출자관계는 거미줄보다 더 촘촘하다. 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서 있는 광윤사를 시작으로 국내 계열사까지 최대 24개의 출자 단계를 거치고 있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 출자 단계가 평균 4개인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복잡한 구조다. 이러다 보니 계열사간에 출자 관계가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A사 →B사 →C사 →A사)나 계열사끼리 서로 지분을 보유하는 상호출자(A사 ⇔ B사)가 마구 뒤엉켜있다. 국내 계열사 간 순환출자 고리가 무려 67개에 달하며, 일본 내에서도 2개의 상호출자와 4개의 순환출자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 순환출자 고리 수는 전체 대기업집단 순환출자(94개)의 71.3%에 달하는 수치. 그나마도 지난해 8월 신동빈 회장이 계열사 주식을 매입하면서 140개를 끊어내는 등 기존 416개 고리 중 84% 가량의 고리를 해소하는 자구 노력을 거친 결과다.
이러다 보니 총수일가 지분에 계열사 출자 비율을 더한 내부지분율은 무려 85.6%에 달한다. 총수일가 지분은 2.4%에 불과한 반면, 계열사 출자 비율이 82.8%에 이르는 탓이다. 국내 10대 그룹 중 롯데를 제외한 나머지 9개 그룹의 평균은 내부지분율이 53.0%로 이보다 크게 낮다. 총수일가의 낮은 지분을 계열사 출자로 보완하면서 기업 지배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반 주주의 참여를 극도로 억제해 왔다는 얘기다. 공정위 관계자는 “일본 36개 계열사는 모두 비상장이고 국내 86개 계열사 중에 10%도 안 되는 8곳만이 상장돼 있다는 사실은 그 만큼 가족 중심의 폐쇄 그룹이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롯데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룹을 지주회사화해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허위자료 제출…신격호 총괄회장 등 제재 착수
공정위는 롯데그룹이 일본 내 계열사 자료를 허위로 제출한 혐의에 대한 제재절차에 착수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산 5조원이 넘는 대기업집단은 총수와 그 일가가 보유한 기업 및 지분 내역을 의무적으로 공정위에 보고하고, 공시해야 한다. 그러나 롯데는 호텔롯데 등 국내 계열사 11곳의 지분을 보유한 광윤사, 롯데홀딩스, L투자회사 등을 총수 일가와 관련 없는 ‘기타 주주’가 소유한 회사라고 허위 보고했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다. 대기업집단이 지분 관련 허위 자료를 고의로 제출할 경우 공정위는 총수 등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할 수 있고, 유죄로 인정될 경우 최고 1억원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롯데가 왜 일본 해외계열사를 기타 주주로 신고했는지, 고의였는지 아니면 정당한 사유가 있었는지 보강 조사가 필요하다”며 “별도로 주주 현황과 관련해 허위 공시한 부분에 대해서도 과태료 처분을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해외 계열사를 기타 주주로 신고했을 때 탈세 등을 통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거의 없다고 보고 있지만 일각에선 롯데가 일본 기업 이미지를 벗으려고 주주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롯데그룹은 이에 대해 “그 동안 일본 롯데 계열사에 대한 자료 제출이 일부 미진했던 부분은 한ㆍ일 롯데 경영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으로 고의성은 없었다”며 “경영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상반기 내 상장을 목표로 호텔롯데의 기업공개(IPO)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세종=남상욱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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