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31일 기업활력제고법(일명 원샷법)ㆍ북한인권법을 합의 처리하기로 했던 29일본회의 무산과 관련,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두 법안의 직권상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직권상정 요건 중에는 천재지변이나 국가비상사태와 함께 ‘국회의장의 교섭단체 대표와의 합의’가 들어있다. 절차적 하자 여부는 따져볼 일이지만 정 의장은 이미 두 법안 처리에 대한 여야 합의가 있었던 만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는 “균형을 잃은 합의였다” “선거법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난제 아니냐”고 하지만 합의 파기의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군색한 변명에 불과하다. 북한인권법만 해도 그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함께’라는 말을 어디에 넣느냐를 두고 다시 쟁점화하려는 등의 행태가 보기 딱하다. 합의를 깨기 위한 핑계를 찾기에 분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경영권 편법 승계를 막기 위한 여러 장치를 찾아 어렵게 절충에 성공한 원샷법을 두고도 새삼스럽게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 운운하는 강경파의 입김에 따라 반대 의견이 커지고 있다니, 김종인 비대위 체제 출범으로 기대를 모았던 당 체질 변화가 모두 헛것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두 법안을 하루 이틀 협의한 것도 아니고, 장기 진통을 겪은 끝에 여야 절충에 이르렀음을 감안하면 합의 파기는 상호 신뢰의 정신, 합의의 소중함에 대한 절대적 인식 부족을 드러낼 뿐이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수시로 손바닥 뒤집듯 합의를 내던지는 행태는 정치를 넘어 사회 불신까지 조장한다. 나아가 국회선진화법의 앞길마저 어둡게 한다. 국회선진화법의 도입 취지가 대결적 정치를 지양하고, 여야의 절충과 합의를 통해 경쟁과 협력의 정치문화를 조성하자던 것 아니었던가.
야당은 선거구 획정 문제나 다른 쟁점 법안과 엮어 두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심산이지만 법안 처리에서 야당의 입지가 과거와 달리 유리해진 상황에서 합의 내용만큼은 이해타산을 떠나 절제를 발휘해 지켜주어야 한다. 아무리 요건을 채웠다고 하더라도 직권상정이 결국은 정치 실패의 다른 이름이다. 결코 올바른 길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합리적이고도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 마땅하다.
여당 또한 예비후보가 선거운동에서 현역의원에 비해 현저한 불공정을 겪고 있는 선거구 획정 문제와 쟁점이 해소되지 않은 파견법의 연계 전략을 계속 고집할 경우 국회 마비를 길게 하고, 정치 파탄만 부르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1월 국회를 빈손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여야가 타협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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