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심히 뛰었는데 결과가 따라주지 못해서…”
예상치 못했던 한ㆍ일전 역전패에 진성욱(23ㆍ인천)은 경기 후 고개를 떨궜다. 그러나 수확은 있었다. 쉽게 잊혀지지 않을 쓰라린 패배였지만 ‘깜짝 선발’ 출장한 진성욱은 신태용호에 희망을 안겨줬다.
진성욱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일본과 결승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 1골 1도움을 작성하며 한국의 두 골에 모두 관여했다. 한국은 2-0으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했으나 진성욱의 존재감만큼은 빛났던 한판이었다. 팀 패배에 빛이 바랬지만 진성욱은 후반 초반까지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신태용 감독은 이날 일본전에서 진성욱을 원톱으로 내세웠다. 진성욱이 이번 대회 들어 단 한 경기 출전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우려와 달리 진성욱의 존재감은 빛났다. 황희찬(20ㆍ잘츠부르크)과 문창진(23ㆍ포항)을 후반 조커로 활용한 카타르와의 4강전과 김승준(22ㆍ울산)을 처음으로 선발로 내 톡톡히 재미를 봤던 조별리그 예멘전 등 신태용 감독의 ‘족집게 용병술’이 또 한 번 발휘된 순간이었다.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진성욱은 김현(23ㆍ제주)과 플레이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보다 파워풀하다”면서 “신태용 감독의 신의 한 수가 통했다”고 평가했다.
4-2-3-1 포메이션에서 가장 위에 위치한 진성욱은 폭 넓은 활동량과 압박으로 일본 수비진을 괴롭혔다. 스트라이커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당황한 일본은 좀처럼 역습을 전개하지 못하며 실수를 연발해 한국에 주도권을 내줬다. 진성욱은 전반 20분에는 큰 키를 이용해 권창훈(23ㆍ수원)의 선제골을 도왔고 후반 2분에는 부드러운 턴 동작에 이어 낮고 빠른 왼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진성욱은 이번 대회 전까지 크게 주목 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올림픽 최종예선 명단에 들기 전까지는 연령별 대표 경험이 전무했다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지난달 4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해 태극마크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이영재(22ㆍ울산)의 데뷔골을 도우며 신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이번 대회 첫 경기에서도 선발 출전해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황희찬, 김현 등에게 밀려 기회를 부여 받지 못했다. 그러나 대회 종료를 앞둔 마지막 순간에 다시 기회가 왔다. 한일전의 선봉장으로 나선 진성욱은 자신의 태극마크 데뷔골을 포함해 맹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올림픽 본선을 앞두고 황희찬-김현, 그리고 와일드카드 선수의 3파전이 예상됐던 최전방 공격수 경쟁에 진성욱도 가세하게 됐다.
진성욱은 “팀(인천)으로 돌아가면 부족한 점을 많이 채우겠다”면서 “소속팀 선수들과 잘 맞추면서 배우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대표팀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점은 아쉽다.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고, 통한의 역전패였기에 충격은 컸다. 한국은 올림픽 최종예선 무패 행진 기록을 34경기(25승9무)에서 마감하며 대회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은 1992년 1월 24일 카타르에 진 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무려 24년 만에 패배를 기록했다.
신태용호는 이날 경기 후반 초반까지만 해도 우승 축포를 터뜨릴 분위기였다. 한국은 권창훈(전반 19분)과 진성욱(후반 2분)의 연속 득점에 힘입어 2-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일본은 아사노 타쿠마(후반 22분)가 첫 골을 넣더니 야지마 신야(후반 23분)가 1분 만에 동점골을 터뜨리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아사노는 후반 36분 다시 골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뒤집었다. 결국 한국은 대회 우승컵을 내주는 동시에 2009년 12월 친선경기 이후 6년 1개월 만에 일본에 패배를 허용했다. 양국간 올림픽 대표팀 상대 전적은 6승4무5패로 한국이 다소 앞서 있다.
한국 축구는 1년 전에도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한 성인 대표팀은 지난해 1월 31일 호주에서 열린 AFC 아시안컵 호주와 결승에서 연장 접전 끝에 1-2로 지며 준우승에 그쳤다. 한국은 55년 만에 아시안컵 정상을 노렸으나 준우승에 머물며 아쉬움을 남겼다.
2014년 9월 태국에서 열린 U-16 챔피언십도 한국 축구로선 뼈아픈 기억이 남은 대회였다. 당시 한국은 ‘축구천재’ 이승우(18ㆍ바르셀로나B)의 맹활약 속에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복병 북한에 1-2로 지면서 우승컵을 놓쳤다.
한국 축구는 2014년부터 3년 연속 AFC 주관 대회에서 준우승에 머무는 불운을 겪었다. AFC는 연령별(U-16, U-19, U-23) 챔피언십을 비롯해 성인 대표팀 대회인 아시안컵을 주관하는데, 한국은 2012년 U-19 대회에서 우승한 후 정상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다. 한국이 우승을 거머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AFC 주관 대회가 아니었다.
세 대회에서 한국이 객관적인 전력상 뒤처진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정신력이 무너지며 잇따라 우승컵을 내줬다. 이번 한일전 패배도 방심이 부른 참사로 평가된다. 신태용 감독은 경기 후 "90분을 소화하면서 단 1%라도 방심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기중기자 k2j@hankookilbo.com 박종민기자 mi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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