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 소두증을 유발하는 지카(Zika)바이러스가 확산 중인 중남미 국가들에서 낙태 허용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31일(현지시간)까지 2,000명이 넘는 임산부가 지카 바이러스 감염자로 확인된 콜롬비아 등 대부분 중남미 국가에선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해왔지만 감염자에 한해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30일(현지시간) AFP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콜롬비아 국립보건연구소는 이날 총 2만297건의 지카 바이러스 감염 및 의심 사례를 확인한 결과 이 가운데 2,116명이 임산부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카 바이러스가 발생한 중남미 23개국 가운데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규모이다. 국립보건연구소는 올해 60만명 이상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500건 이상의 소두증 사례가 보고될 것으로 예상했다. 과테말라 보건당국 역시 이날 국내에서 지난해 이래 최소 105명이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확인했다.
지카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됨에 따라 여성인권단체들은 중남미 국가들에 낙태 합법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임산부가 소두증 아기를 낙태하기 위해 비위생적인 불법 시술을 받다가 사망할 우려가 있다”라며 특히 저소득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감염자의 낙태수술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카티야 이베르센 ‘여성 출산(Women Deliver)’회장도 “피임과 낙태기회를 보장하지 않은 채 임신을 미루라는 주장은 싸구려 정책이다”라며 “바이러스 확산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감염 피해를 떠안는 여성을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두증 신생아는 일반적으로 출생 후 수년 내 사망하며, 생존하더라도 영구 장애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산모가 낙태를 시도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중 대부분이 불법시술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미국 구트마커 연구소의 2008년 보고서에 따르면 그 해 중남미지역에서 발생한 낙태 440만 건 중 약 95%가 의료시설 밖 안전하지 못한 장소에서 이뤄졌다.
중남미 국가들은 가톨릭 인구가 대다수여서 낙태를 불법화하거나 성폭력 피해자에 한해서만 낙태를 허용한다. 예외로 브라질은 산모가 위중한 경우, 아기가 무뇌증(無腦症) 등으로 생존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가한다. 따라서 이들 국가가 여성단체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일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브라질 보건 당국은 “소두증은 생존 가능성이 없는 질병으로 볼 수 없다”라며 사실상 지카 바이러스 감염 여성의 낙태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브라질 일간지 ‘폴라 지 상파울루’는 31일 “소두증으로 인한 낙태를 합법화할지를 논의해야 할 시기이다”라는 내용의 사설을 게재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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