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심 내다 ‘링마벨’처럼 망해요.” “서울로 올라와 월세 살이를 했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을 끝내고 최근 인터뷰를 위해 만난 걸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22)는 솔직했습니다. 그룹 활동 실패담뿐 아니라 민감할 수 있는 가정사까지 눈치보지 않고 털어놨죠. 그랬던 혜리가 유독 “음”이라며 답을 망설였던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응팔’ 결말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극중 덕선(혜리)의 남편이 택(박보검)으로 정해진 것을 두고 시청자 사이에 인 갑론을박 때문이죠. 극중 김주혁이 왼손잡이로 나왔다는 점 등을 바탕으로 덕선의 남편은 어차피 왼손잡이인 택이었다는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파는 당연하게 결말을 받아들였지만,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파는 반대였습니다. 김주혁의 툴툴대는 성격은 오히려 류준열과 닮았고, 중반까진 덕선의 짝으로 그가 유력한 분위기였는데 택으로 정해져 공감이 안 된다는 아우성을 온라인에 쏟아냈습니다.
실제 방송가에서도 ‘어남택’ 결론을 두고 소문이 무성했던 게 사실입니다. 애초 덕선의 남편은 류준열이었는데, 박보검이 방송 후 시청자의 인기를 끌자 택으로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엔 류준열과 ‘응팔’ 제작진의 ‘불화설’까지 나왔죠. 하지만 드라마의 결론을 둘러싼 열띤 입싸움에 제작진은 입을 닫고 있습니다. ‘응팔’을 연출했던 신원호 PD와 극본을 담당한 이우정 작가 모두 지난 16일 드라마 종영 후 외부와의 접촉을 삼가고 있습니다. “제작진이 ‘응팔’ 종영 후 인터뷰를 원치 않는다”는 게 tvN 관계자의 설명이었습니다. 신 PD가 ‘응답하라 시리즈’ 후 드라마 관련 인터뷰를 고사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결국 ‘응팔’ 결론을 둘러싼 궁금증은 주인공인 혜리의 입에 쏠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덕선이 왜 이런 대사를…” 신원호 PD 찾아간 혜리
그러면 혜리가 인터뷰를 하며 어렵사리 꺼낸 말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혼란스러웠죠”였습니다. 덕선을 연기하던 자신도 택과 류준열 사이 로맨스의 방향을 쉬 종잡을 수 없었단 얘깁니다. 그 고민의 흔적으로 혜리는 16회 대사를 예로 들었습니다. 극중 택이가 중국에서 대국을 마치고 덕선에게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한 뒤 ‘되는 일이 없네’라고 한 대사였습니다. 혜리는 “왜 덕선이 이런 말을 하고 한 숨을 쉬는지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혜리는 신 PD를 찾아가 “왜 덕선이가 택이 때문에 잠을 못 자요?”, “덕선이는 왜 이런 대사를 해요?”라고 물었답니다. 그 때 혜리가 들은 답이 “택이 남편이니까” 였습니다. 혜리도 15회까진 류준열에 기울어진 채 남편 찾기 연기를 했다는 뜻입니다. 혜리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러고는 결말에 대해 “모두의 마음에 들 순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덕선과 택의 결혼식 장면이 나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계획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성동일 감사패 김성균이 주려했는데…”
웃지 못할 촬영 뒷얘기도 많았습니다. 혜리는 촬영하다 ‘사고’도 쳤습니다. 극중 아버지인 성동일에게 줄 감사패를 떨어뜨려 두 동강이 내버린 겁니다. 닷새 째 밤샘 촬영을 하던 혜리는 당일 오전 6시께 시작된 촬영에서 출연자가 모두 모여 있는데 홀로 서서 연기를 해야 해 긴장감에 사로 잡혔다고 합니다. 혜리는 “한일은행을 정년 퇴임 한 성동일에게 감사패 속 문구를 읽기로 했던 분은 김성균이었다”며 “촬영 당일 내가 읽는 거로 바뀌어 완전히 ‘멘붕’이었다”고 웃었습니다. 혜리는 긴장한 탓에 손을 떨어 유리로 된 감사패를 결국 놓쳤습니다. 제작진은 감사패를 급히 본드로 붙여 촬영을 재개했습니다. 방송 1~2일 전이라 감사패를 추가 제작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혜리는 “자세히 보면 감사패 갈라진 게 보일 것”이라며 웃었습니다. 신 PD는 덕선이 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김성균에서 혜리로 촬영 대상을 바꿨다고 합니다.
촉박한 촬영 일정으로 고됐지만, 촬영장 분위기는 즐거웠다고 합니다. 혜리는 “이동휘와 촬영을 할 땐 하도 웃겨 NG를 많이 냈다”고 했습니다. 정봉(안재홍)과의 케이크 ‘먹방’ 촬영은 고난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먹었던 케이크 중에 가장 느끼해 괴로웠고, ‘먹방’은 쉽지 않단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농담을 하다가도 연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털어놔 배우 혜리의 성장에 기대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일화(덕선 어머니) 선배님이 갱년기로 힘들어할 때 ‘엄마, 나가자’고 하면서 옷을 가지고 나가는 장면이 있어요. 방송 보고 나니 옷을 찾아야 하는데, 내가 옷이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알고 찾아가는 동선이 보이더라고요. ‘응팔’을 하면서 그런 자연스러운 디테일을 배우게 됐어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