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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있는 삶...우리가 너무 많이 바라나요?

입력
2016.01.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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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하우스의 옥상. 원래 옥탑방 거주자의 전유물이던 것을 개방해 전 세대가 사용하는 공용공간으로 바꿨다. 최성경씨 제공
캔버스하우스의 옥상. 원래 옥탑방 거주자의 전유물이던 것을 개방해 전 세대가 사용하는 공용공간으로 바꿨다. 최성경씨 제공

TV의 아파트 광고는 기가 막힌 한강 조망과 전면이 유리로 된 욕조를 들먹이며 우리의 욕망을 왜곡한다. 그러나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주거에서 바라는 것은 기실 대단하지 않다.

팬티가 주렁주렁 달린 빨래 건조대가 방 안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음식물 쓰레기를 냉동실이 아닌 베란다에 둘 수 있으면 좋겠다. 침대와 TV만 놓으면 꽉 차 버리는 방 안에서 누워 있는 것 말고 다른 것도 좀 해보고 싶고, 무엇보다 2년마다 새로운 집을 찾아 헤매며 ‘전세 대란’ 따위 기사 제목만 보고 벌벌 떨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리한 요구는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현 대한민국의 주거 환경은 이중 어떤 것도 호락호락 내주지 않는다.

신축 풀옵션 원룸의 함정

서울 이문동 다가구주택 골목 한가운데 자리잡은 ‘캔버스하우스’는 이처럼 주거문화에 스며든 일련의 ‘불의’에 맞서 시작됐다. 부산에서 상경해 대학원 생활을 하던 최성경(32)씨가 원룸 생활을 접고 2층짜리 다가구 건물을 매입한 건 2014년 7월이다.

“대학원 과제로 소필지 주거지역의 역사와 생태를 연구하면서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근처 이문동의 한 블록을 집중 조사했어요. 1970~80년대 100%였던 단독주택 비중이 2010년 이후엔 36%로 떨어지고 다가구(49%)와 원룸(15%)의 비중이 치솟았더라고요. 이게 뭘 말하는지 일반 사람들은 잘 몰라요. 마당이나 옥상 같은 공용공간이 사라져 생활 반경이 집 내부로 한정되고 있다는 뜻이죠. 반지하도 다가구주택과 함께 등장했어요. 주거의 질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집에 쓰는 셈입니다.”

전체 파이가 줄어들 때 인간은 늘 위가 아닌 아래에서 해결책을 찾는다. 빨래 건조대에 밀려 카페에서 공부하는 처지가 되더라도, 더 싸고 좋은 카페를 검색할지언정 부당하게 빼앗긴 공간에 대해선 항의할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최씨에 따르면 50평짜리 단독주택이 원룸으로 개발될 경우 집주인에게는 매달 약 300만원의 수익이 떨어진다. 여기까진 시장의 논리라 쳐도 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실제로 이 동네에 6개의 원룸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그 수익으로 인근에 20층짜리 오피스텔을 짓는 사례를 목격했다.

“소필지 주거지역의 미래는 원룸으로 개발되거나 아예 재개발되거나, 둘 중 하나예요. 대안이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공용공간이 확보된 질 좋은 주거환경을 적당한 비용으로, 도시생태를 해치지 않으면서, 장기적으로 누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요.”

그는 직접 부딪치기로 했다. 이문동 인근에서 3억원 미만의 매물을 찾다가 2억5,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온 다가구건물을 발견했다. 건축면적 46.82㎡(약 14.1평)에, 지하1층, 지상 1, 2층, 옥탑으로 이뤄진 낡고 평범한 주택이었다. 싸게 나왔다고는 하지만 최씨가 가진 돈을 전부 합쳐도 절반에도 못 미쳤다. 서울살이 5년째인 최씨의 자산은 원룸 전세 보증금 9,000만원에 현금 1,500만원. 물론 상당 부분 부모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최씨는 고향에서 함께 올라온 친구들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그들의 사정도 비슷했다. 음향설비회사에 근무하며 회기동에서 전세 7,000만원짜리 원룸(관리비 5만원)에 거주하는 김수연(30)씨, 인테리어회사를 다니며 구로동에서 보증금 3,0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 원룸에 사는 정유진(29)씨. 지금 대한민국 청년 주거의 표본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최씨는 친구들을 설득하면서 ‘역에서 1분 거리, 주거 안정성, 넓은 공용공간, 거실이 있는 생활’을 내세웠다. “얘들이 원룸에만 살다 보니 거실 소파에 누워서 TV 보는 게 로망이에요. 집에 들어왔을 때 자는 것 외에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길 바라는데 원룸에선 그게 힘드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30대 초반에 빚 없이 서울 시내에 집을 산다는 거죠.”

이문동 캔버스하우스 스케치.
이문동 캔버스하우스 스케치.
이문동 다가구주택 골목에 자리 잡은 캔버스하우스. 오른쪽이 공사 후의 모습. 철망을 두른 것 외엔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 최성경씨 제공
이문동 다가구주택 골목에 자리 잡은 캔버스하우스. 오른쪽이 공사 후의 모습. 철망을 두른 것 외엔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 최성경씨 제공
캔버스하우스 1층 정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철망문을 약간 안쪽으로 들여 달아 보행자들에게 여유 공간을 주고자 했다. 최성경씨 제공
캔버스하우스 1층 정면.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철망문을 약간 안쪽으로 들여 달아 보행자들에게 여유 공간을 주고자 했다. 최성경씨 제공

옥상, 베란다, 거실…잊고 산 주거의 질

집 계약 후 몇 달 간은 정신이 없었다. 중도금과 잔금 지급 시기에 맞춰 3명이 동시에 살던 집을 정리하면서 수리까지 병행해야 했다. 최씨는 먼저 계단실부터 개방했다. 원래 계단실은 1층 위부터 막아 놓아 2층에 살던 주인 내외와 옥탑방을 쓰던 주인집 딸 외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계단실에 이어 옥상도 개방해 모든 입주자들이 쓸 수 있게 하고, 현관의 파란색 철문을 없앤 뒤 안이 반쯤 들여다 보이는 회색 철망문을 약간 안쪽으로 들여서 달았다. 보행자들에게 작은 여유공간을 내준 셈이다.

“가능하면 많은 공간을 같이 쓰고 싶었어요. 공용공간의 필요성에 많은 분들이 무감각한데, 옥상에서 바람 쐬는 건 사소하지만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에요. 원룸 업자들 중엔 내부만 화려하게 꾸며서 입주자들을 현혹하고 옥상엔 방을 불법 증축해서 수익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세를 줄 1층은 하얀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하고, 친구 두 명이 함께 살 2층은 방 2개 중 하나를 터서 거실로 만들었다. 욕실 샤워기 있는 쪽엔 유리문을 달아 두 사람이 동시에 쓸 수 있게 했다. 옥탑은 최씨의 몫. 현행법상 불법이던 옥탑방을 벌금을 납부한 뒤 합법화해 3층으로 만들었다.

최씨의 두 친구가 함께 사는 2층. 오른쪽이 공사 후의 모습이다. 주방과 작은방 사이 미닫이문을 떼어내 거실로 만들었다. 최성경씨 제공
최씨의 두 친구가 함께 사는 2층. 오른쪽이 공사 후의 모습이다. 주방과 작은방 사이 미닫이문을 떼어내 거실로 만들었다. 최성경씨 제공
공사 후 2층 주방 모습. 3층에 사는 최씨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거실과 주방을 이용한다. 최성경씨 제공
공사 후 2층 주방 모습. 3층에 사는 최씨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거실과 주방을 이용한다. 최성경씨 제공
최씨가 생활하는 3층. 성인 남자가 누우면 꽉 찰만한 크기지만 옥상과 2층 거실을 함께 사용하다시피 해 큰 불편함이 없다. 최성경씨 제공
최씨가 생활하는 3층. 성인 남자가 누우면 꽉 찰만한 크기지만 옥상과 2층 거실을 함께 사용하다시피 해 큰 불편함이 없다. 최성경씨 제공

삶의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데서 찾아왔다. 원룸에 살 땐 비좁은 주방과 혼자라는 이유 때문에 거의 손 놓고 있던 ‘밥 해먹기’가 시작된 것이다. 월세로 나가던 돈은 고스란히 식비로 돌려져 식탁이 한층 건강해졌다. 주방 공간을 착실하게 활용해 김치냉장고를 들이는 호사도 부렸다. 퇴근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있다가 잠들던 집은 이제 온기를 품은 살림집으로 바뀌었다. 개방된 옥상은 여름에 고기를 구워 먹거나 볕 좋은 날 빨래 너는 장소로 쓴다. 1층에 세 들어온 남매도 종종 고기파티에 동참한다. 자연스럽게 거주자 커뮤니티가 형성된 것이다.

조금 더 나은 거주를 위해 우린 뭘 할 수 있을까

캔버스 하우스를 ‘청년 주거의 대안’이라 부르기엔 몇 가지 한계가 있다. 일단 집의 소유권자는 최씨이고 정씨와 김씨는 엄연한 세입자다. 세 사람처럼 탄탄한 친분 관계로 묶이지 않은 이상 세를 올리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투자 비용이 점유하는 공간과 비례하지 않는 것도 숙제다. 최씨는 가장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가장 좁은 3층을 쓰고 있다. 한 사람이 희생해야 가능한 주거 형태라면 이 또한 안정적이지 않다. 끝으로 최씨가 건축 전공자라는 점이다. 낡아빠진 집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수리해서 쓰기까지는 상당한 경험과 식견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캔버스하우스는, 점점 더 공고해지는 주거 먹이사슬에 투항하지 않고 ‘내 집 갖기’라는 불가능한 미션에 도전해 일련의 성취를 거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씨는 투자비와 점유 공간 사이의 균형을 천천히 조정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건축은 항상 돈 있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캔버스 하우스는 겉보기엔 그냥 낡은 다가구주택이에요. 실제로 우리가 얻은 것도 원래 누렸어야 할 평범한 것들이고요. 하지만 이게 당장 모든 젊은이들이 마주해서 싸워야 할 현실이에요. 조금 더 나은 거주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볼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여름 세 사람이 옥상에 모여 파티를 열었다. 방을 벗어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최성경씨 제공
지난해 여름 세 사람이 옥상에 모여 파티를 열었다. 방을 벗어나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다. 최성경씨 제공
캔버스하우스 주인 최성경씨.
캔버스하우스 주인 최성경씨.

황수현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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