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증권사의 '꽃'으로 불리던 애널리스트가 전성기를 지나 점점 시들어 가고 있다.
증시 부진과 정보의 홍수 속에 애널리스트 본연의 업무인 기업분석 수요가 줄어들면서 몸값 하락에 시달리거나 아예 전직을 하는 애널리스트가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정보기술의 확산과 장기 불황으로 신규 인력 채용이 감소하면서 애널리스트들의 근무 환경도 나빠져 가고 있다.
3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8일 기준 58개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는 모두 1,064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작년 초 1,156명에서 1년 새 100명 이상 줄어든 것으로, 2011년 초 1,492명과 비교하면 30%가량 감소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전문직종으로 꼽히는 펀드매니저의 수가 2011년 초 578명에서 올해 590명으로 조금이나마 늘어난 것에 비춰보면 애널리스트의 감소세가 예사롭지 않다.
신규 채용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애널리스트의 연령대도 높아져 가고 있다.
증시가 활황이던 2011년 6월 당시 전체 애널리스트 평균 나이는 33.4세였다. 당시 20대의 비율이 25.5%(394명)에 달해 '젊은 피'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았다.
그러나 현재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나이는 36.9세로 3.5세가량 높아졌다. 20대 애널리스트는 155명으로 전체의 14.6%에 불과하다.
연령대는 높아졌지만, 평균 경력 기간은 5년6개월에 그쳤다. 보통 기업으로 치면 사원∼대리급 연차가 주류이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애널리스트는 172명뿐이었다. 협회에 등록된 최장수 애널리스트의 경력기간도 11년6개월이다.
펀드매니저 직종에선 최장수로 꼽히는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을 비롯해 이영석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과 손동식 미래에셋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 대표 등 20년 안팎의 경력자들이 즐비한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최근엔 대형 증권사조차도 애널리스트를 별도로 채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신입직원 중에서 희망자를 리서치센터로 보내거나 저임금으로 2∼3년 간 근무한 리서치 보조(RA) 중 유능한 사람을 골라 애널리스트로 채용하는 정도다. 국내 한 대형 증권사는 아예 리서치센터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이처럼 애널리스트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는 것은 증시 부진으로 기업분석 수요가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작년 유가증권시장의 거래대금은 1,290조원으로, 2011년의 1,664조원에서 5년 새 23%가량 감소했다. 수년간 박스권에 갇힌 증시에 투자자들이 점점 관심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애널리스트가 생산하는 리포트(보고서)의 수요자인 펀드매니저들의 입장이 예전과 달라진 점도 애널리스트 감소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에서 최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로 변신한 A씨는 "셀사이드(Sell-side)에서 바이사이드(Buy-side)로 건너 와서 보니 애널리스트의 리포트가 필요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며 "운용사가 리서치를 두는 경우도 있어 일부 스타급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만 참고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애널리스트 직종 자체의 연봉이나 안정성 등 고용 조건도 예전만큼 호의적이지 않다.
한 대형 증권사의 고위 관계자는 "과거 인기 애널리스트는 스스로 정규직을 포기하고 고액 연봉 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몸값을 올렸다"며 "지금 애널리스트는 연봉은 정규 직원 수준으로 떨어지고 오히려 계약을 맺을 때마다 구조조정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애널리스트를 하다가 지점에서 영업을 하거나 자산운용사로 이동하는 인력도 많다"고 덧붙였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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