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슬란드와의 첫 만남, 골든서클 투어를 마쳤다면 이번엔 ‘얼음과 불의 나라’아이슬란드를 만날 차례다. 1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는 남부해안 투어는 빙하 라군 지역인 요쿨살론,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빙하워킹, 그곳까지 가는 길에 만나는 장엄한 폭포 등으로 아이슬란드에서 볼거리, 체험거리가 가장 많은 코스다. 수도 레이캬비크를 출발해 1박 2일 동안 남부해안을 따라 아이슬란드의 다채로운 장관과 마주했다.
60m 폭포 아래서 천연 암반수 미스트 맞기

입이 떡 벌어졌다. 20인승 미니버스에 앉아 시원스레 탁 트인 1번 국도를 달리던 중 거대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가 눈에 들어왔다. 남부해안의 첫번째 스펙터클, 셀야란즈포스(Seljalandsfoss)다. 버스에서 내려 폭포로 달려갔다. 코 앞까지 달려가보니 수면과 부딪친 물방울들이 튀어 바닥에 포도 알처럼 얼어있었다. 폭포수가 흐르는 강물을 떠 마셨다. 청량하고 투명한 맛, 가슴속까지 시원해졌다.

셀야란즈포스를 떠난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두번째 폭포를 맞닥뜨렸다. ‘꽃보다 청춘’팀이 전망대 꼭대기를 향해 힘겹게 올라갔던 바로 그 폭포, 스코가포스(Skogafoss)다. 스코가포스는 셀야란즈포스보다 좀더 우묵한 안쪽에 들어가 있어 더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폭포 앞에서 사정없이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을 미스트인 양 얼굴에 맞으며 ‘평생 볼 폭포를 다 봤다’고 느꼈다.

굴포스, 셀야란즈포스, 스코가포스. 뭔가 공통점이 보인다. 이름 끝에 모두 ‘포스(foss)’가 붙어있다. 아이슬란드어로 폭포를 뜻하는 말이다. 내친김에 더 하자면, 아이슬란드 말로 살론(sarlon)은 라군(석호), 쿨(kull)은 빙하를 의미한다. 남부해안 여행의 대미인 요쿨살론은 빙하 석호인 셈이다.
활화산이 꿈틀대는 불의 나라

셀야란즈포스와 스코가포스 사이에는 작은 표지판 하나가 있다. 길가에 따로 주차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이 표지판 앞에 버스를 세운 가이드는 “저게 바로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이라며 손가락으로 눈 덮인 오른쪽 산을 가리켰다.
발음도 힘겨운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은 작은 빙하다. 아이슬란드에서 빙하가 신기한 것은 아니지만, 에이야퍄들라이외퀴들은 존재감이 확실한 빙하다. 산 모양의 빙하 꼭대기, 빙모는 1,666m의 화산을 덮고 있는데 이 화산이 바로 최근인 2010년 3월 분화했다. 마지막 분화가 1823년이었던 걸 감안하면 약 200년만의 분화였던 셈. 분화 이후 화산재가 제트기류를 타고 번지면서 유럽의 모든 공항이 2주간 운항을 중단하는 대소동을 겪었다. 최근 일어난 화산 활동인데다 전 유럽의 하늘을 마비시키며 악명을 떨친 덕분에, 이곳 가이드들이 아이슬란드를 설명할 때 2008년 금융위기 사태와 더불어 가장 많이 언급하는 사건이다.
아이슬란드 최남단의 파이프 오르간

폭포와 화산을 지나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아이슬란드 최남단에 닿는다. 해가 지기 전, 검은 모래 해변과 주상절리로 유명한 레이니스피아라에 도착했다. 신기할 정도로 부드럽고 새까만 모래가 발 밑에 펼쳐져 있다. 왼편에는 파이프 오르간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주상절리 돌기둥이 관광객들의 사진 세례를 받고 있다. 레이캬비크의 헬그림스키르캬 교회가 주상절리를 형상화했다는 설명이 바로 수긍이 가는 모습이다.
레이니스피아라 옆에는 진짜 ‘아이슬란드 최남단’인 디르홀레이(Dyrholaey)가 자리하고 있다. ‘꽃청춘’에서 레이캬비크 공항에서 만난 아저씨가 ‘반드시 가봐야 할 곳’으로 꼽은 곳인데, 해가 짧아 들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요쿨살론

다시 아침이다. 주위가 서서히 밝아질 무렵인 오전 10시 즈음 요쿨살론(Jokulsarlon)에 도착했다. 요쿨살론은 일종의 빙하 석호. 빙하 아래로 거대한 얼음 조각들이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는걸 볼 수 있는 호수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서면 확 트인 경관을 만날 수 있는데, 글쎄, 사진으로도 그 풍광의 절반도 담지 못하고 말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평생 처음 보는 광경에 말문이 막히고 입을 떡 벌리고 눈을 떼지 못하게 될 뿐. 이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지금까지 봤던 온갖 CG와 특수효과로 범벅이 된 영화들을 소환해보지만, 그 무엇으로도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을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되는 것이다.



바닥까지 비치는 투명한 석호에는 바다표범들이 자맥질을 하며 놀고 있었다. 관광객 바로 근처까지 와 장난을 치는 모습엔 경계심이라곤 없어보였다.
석호의 물과 빙하조각들은 천천히 바다로 흐르고, 바로 건너편 요쿨살론 아이스비치에는 빙하 덩어리들이 조각품처럼 모여있었다. 햇빛에 반짝이는 얼음 조각들은 마치 보석 같아 또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귀를 기울이면 빙하가 ‘꿈틀’… 빙하 위를 걷다

마침내 1박2일 남부해안투어의 백미, 빙하워킹이다. 아이슬란드 여행의 모든 투어 중 가장
이색적이고 기대됐던 순간이었다.
아이젠과 안전고리, 안전모로 완전무장을 하고 가이드를 따라 스카프타펠(Skaftafell) 국립공원의 빙하 지역을 1시간~2시간 정도 둘러보는 코스다. 빙하워킹이라고 해서 체력부담이 클 줄 알았지만, 5살 아이부터 70대 할머니까지 18명의 일행은 가이드들의 도움을 받아 모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푸른 빛 얼음이 넘실거렸다. 빙하는 마치 파도가 언 것 같았다. 화산재가 얼음 위에 쌓이고 그 위에 다시 얼음이 얼면서 빙하에는 검은색 줄무늬가 새겨졌다. 가이드는 “1분만 소리를 내지 말고 귀를 기울여보라”고 했다. 인기척은 커녕 아무것도 움직이는 존재가 없는 것 같은 빙하 저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리, 쌓인 눈들이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빙하의 갈라진 틈, 크레바스가 곳곳에 널려있었다. 균열이 심한 곳은 마치 동굴 같았다. 빙하 동굴은 정밀하게 다듬은 보석처럼 반질반질했다.
아이슬란드의 많은 관광지와 같이, 이 곳에도 관광객에게 편의를 주는 어떤 인공적인 도구들이 없었다. 사람이 낸 작은 발자국외에는 길을 알려주는 표식조차도 없었다. 오로지 전문적인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반드시 한 줄로 넓디 넓은 빙하를 가로지르는 것이 전부다.
덕분에 수천, 수만년간 켜켜이 쌓인 얼음층들의 한 가운데서 인간이 얼마나 티끌만한 존재인지를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빙하워킹을 마지막으로 1박 2일간의 남부해안 투어를 마무리하고 레이캬비크로 돌아왔다. 얼음과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의 진면목을 만난 여정이었다. 호텔 침대에 쓰러져 잠들면서도 빙하 위에 서서 들은 얼음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레이캬비크=글ㆍ사진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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