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이 훌쩍 넘는 연주가 끝나자 1층 객석의 3분의 1이 일어섰다. 그러나 작품 전체 구조나 앙상블의 조화보다 사운드 질감과 세부 표현의 정교함을 우선시하는 지휘자 특유의 스타일에 대한 관객 반응은 찬반이 극렬하게 나뉘었다.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카르도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시카고 심포니)의 내한 공연은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 친숙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색다르게 해석해 논란을 일으켰다. 각 악기군의 뛰어난 테크닉, 무대 어디에서 연주되는지를 한 번에 알 수 있을 정도의 탁월한 원근감에 감탄하는 관객이 있는 가하면, 느린 템포와 멜로디가 선명한 정제된 연주에 실망을 보이는 이도 있었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는 “무티는 각 부분의 디테일 표현력과 음질을 극한까지 실험하는 지휘자다. 전체적으로 볼 때 흐름이 끊긴 해석으로 보일 수도 있다”며 “말러 교향곡을 번스타인식으로 죽 이어서 연주하는 방식이 익숙한 한국 무대에서 무티는 혁신적이고 낯선 연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1악장은 역동성과 진취적인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통상의 해석을 깨고 멜로디에 집중했다. 1악장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2악장은 시카고심포니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주제부 비올라 첼로 연주 부분에서 객석 맨 구석자리까지 퍼져나가는 클라리넷과 바순의 ‘극도로 여린음’은 찬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첫 모티프가 변형돼 다시 등장하는 3악장은 첼로와 바이올린이 마치 노래를 이어 부르듯 두 개의 주제를 주고 받았다. 바로 이어진 4악장에서 시원하게 울려퍼지는 트럼본과 섬세함이 살아있는 더블베이스, 팀파니 연주는 라이브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묘미를 선사했다.
2부 말러 교향곡 1번 역시 복잡다단한 말러의 음악을 선명한 선율로 해석해 찬반 논란을 낳았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게 뿜어내는 금관, 탁월한 원근감이 돋보이는 현악 등 탁월한 기량으로 말러 교향곡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 충분히 흥미를 가질 연주를 선보였다. 하지만 작곡가 특유의 이중성을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평도 따랐다.
유명세를 듣고 몰린 관객들이 크게 기침을 하고 심지어 연주 도중 일행에게 말을 거는 등 상식 밖의 매너를 반복해 불만의 표시로 지휘자가 연주를 잠깐 멈추는 등 해프닝도 벌어졌다. 3악장 시작 부분에서 팀파니가 동요 ‘마르틴 형제’ 멜로디를 시작할 무렵 연주회 내내 악보보다 무티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단원들은 연주를 멈추었고, 지휘자 지시로 곧 연주를 이어갔다. 4악장 총주 뒤 잠시 앙상블이 뒤엉키기도 했다.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는 “특정 지점을 꼽기 보다는 프레이징(악보 해석의 기준)을 길게 잡는 편인데, 한 프레이징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갈 때 앙상블의 관악과 금관 조화가 맞지 않는다거나 앙상블이 자주 삐걱거렸다. 시카고 심포니가 저력있는 악단임은 분명하지만, 시카고 심포니 수준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실수”라고 평했다. 이어 “무티는 원숙한 지휘자의 관점에서 자기 나름대로 말러를 재해석한 걸로 보인다. 작품을 구획 구획 나눠서 명확하게 이끄는 편이라 관객 평이 엇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무티와 시카고 심포니의 공연은 29일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이어진다.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제1번 ‘고전적’, 힌데미트의 현과 관을 위한 합주음악 작품50,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4번을 연주한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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