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 과학
마커스 초운 지음ㆍ김소정 옮김
교양인 발행ㆍ468쪽ㆍ1만8,000원
내가 어렸을 때 집에 20권짜리 세계대백과사전이 있었다. 심심하면 그 중 한 권을 빼서 무작정 펼쳐놓고 재미있는 주제어를 찾아 읽다가 어려우면 건너 뛰고, 쉽고 재미있는 주제를 찾아 읽었다. 흥미로운 하나의 주제가 끝날 즈음이면 거기에 연관된 다른 주제어가 제시되는데 그 주제어가 들어있는 책을 찾아 동일한 과정을 반복했다. 호기심 많던 시절 집에 백과사전이 있었던 것이 다행을 넘어서 축복이었다고 생각한다. 무척 가난한 집안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더욱더 그러했다.
마커스 초운의 ‘만물 과학’은 내 어릴 적의 백과사전 놀이를 생각나게 했다. 내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의 대강이 책 한 권에 들어있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생명과 인간, 문명과 자본주의, 지구과학,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우주론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주제를 단 한 권의 책에서 다룬다. 세부항목을 들여다 보자면 세포, 호흡, 진화, 성, 뇌, 인류의 진화에서 출발해 문명, 전기, 컴퓨터, 돈, 자본주의 등 주로 기술과 경제라는 측면에서 본 문명론을 거쳐 지질학과 대기를 설명하는 지구과학에까지 거침없이 내달린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전초전에 불과하다. 그의 주특기는 현대물리학과 우주론이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을 비롯해 양자역학, 특수상대성이론 및 일반상대성이론, 그리고 표준모형의 소개를 거쳐 시간과 공간에 대한 현대 물리학 이론, 빅뱅우주론과 블랙홀을 아우르는 우주론으로 책을 마무리 한다.
연관 주제어를 찾아 이 책에서 저 책으로 날아다니지 않아도 마치 코스요리를 즐기듯, 다채롭고 맛있고 깔끔한 주제가 쉴 새 없이 나오니 우리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페이지를 넘기며 탄성만 지르면 된다. ‘탄성’이란 말을 쓰고 나니까 어쩌면 코스요리보다는 지식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아주 작은 소립자의 세계에서부터 아주 큰 우주까지 종횡무진할 수 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저자 스스로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을 기획한 편집자 닐 벨턴이 복잡한 물리학을 쉽게 설명하는 특기를 가진 저자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것을 확장해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하는 데 사용해보라고 충동질한 결과 이 책이 나왔다. 저자 자신도 책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가 직접 밝히는 스스로 알게 된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2008년 전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트린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위험한 투자상품은 한가지 상품만 이해하려고 해도 10억쪽이나 되는 문서를 읽어야 한다”라든가 “점균류의 성(性)은 13종류이다(따라서 짝을 찾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각설탕 한 개의 부피에 모든 인류를 집어 넣을 수 있다”, “한때 IBM은 지구에서 컴퓨터를 팔 수 있는 시장은, 다섯 곳밖에 없을 거라고 예측했다” 등등. 이와 같은 얘기들이 책의 곳곳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쉽고 위트가 넘치는 그의 글은 또한 최신의 성과들이 최대한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여러분의 과학지식을 보충하거나 업데이트하기 위해서 꼭 한 번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형열 ‘과학책 읽는 보통사람들’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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