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현행 국회법은 여야의 물리적 충돌이 극심했던 18대 국회 당시 여야가 ‘폭력국회’를 막겠다며 내놓은 것이다. 황우여 한나라당(현 새누리당)ㆍ김진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주도로 2011년 논의를 시작한 여야는 1년 여간의 공방 끝에 2012년 5월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선진화법을 표결 처리했다.
18대 국회에서 여야의 물리적 충돌은 어느 때보다 잦았다. 여당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하는 과정에서 해머(2008년)가 등장했고, 본회의장에서 최루탄(2011년)이 터지기도 했다. 2010년 12월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에서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했다. 때문에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대폭 강화해 다수당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법안을 강행처리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선진화법 도입에는 새누리당이 더 적극적이었다. 19대 총선을 목전에 두고 ‘여당 의원실 직원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등 잇단 악재가 터지면서 총선 패배의 위기감이 짙어지자 개혁 의제를 선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물론 반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당시 국회의장 권한대행이었던 정의화 의장은 당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선진화법이 통과되면 쟁점법안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져 ‘식물국회’가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반대론은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승리하자 더 거세졌다. 하지만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4월 “총선 전에 여야가 합의했고, 국민께도 약속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일단락 됐다. 비박계가 박 대통령이 쟁점법안 처리 문제와 관련해 국회의 무능을 비판하는 데 대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선진화법은 그 해 5월 열린 마지막 본회의에서 192명이 투표해 찬성 127명, 반대 48명, 기권 17명으로 의결됐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여당 의원들은 대거 찬성표를 던졌다. 하지만 친박계인 윤상현ㆍ이경재 의원 등은 반대했고, 최경환ㆍ유기준 의원은 기권했다. 김무성 대표가 지난 26일 선진화법 입법과 관련해 “당시 권력자가 찬성으로 돌자 의원들이 전부 다 찬성으로 돌아섰다”고 비판한 데 대해 친박계가 강력 반발하는 이유다.
선진화법 이후 19대 국회에서 몸싸움은 사라졌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선진화법 탓에 의석 과반을 점하고도 정국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식물국회’가 됐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국정원 개혁(2013년), 세월호특별법 제정(2014년), 4대 개혁 추진(2015년) 등 국면마다 선진화법에 기댄 야당의 쟁점법안 처리 연계전략에 발목을 잡힌다는 것이다. 물론 예산안 본회의 자동 상정 조항은 예산정국에서 정부ㆍ여당의 협상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동현기자 na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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