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에 스타일리스트들이 출연할 때가 있다. 유명 연예인의 옷차림을 책임지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옷을 입는 방법을 조언한다.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패션 품목을 조합하고 뒤섞는 마법을 보여준다. 그들의 조언은 상황무감각증에 걸린 많은 이들을 구제해준다. 즉 특정 연출이 필요한 상황과 맥락, 분위기를 전혀 읽지 못하는 이들에겐 스타일리스트들의 표준화된 매뉴얼은 좋은 치료법이다.
스타일과 취향은 소비경제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두 개의 축이다. 해시태그로 연결되는 사회관계망 속에서 인간은 공통 취향을 아교로 삼아 하나로 뭉친다. 해외 패션뉴스에도 스타일워치, 스타일레슨 같은 부제를 단 기사들이 매 시간 올라온다. 해외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옷차림을 다룬다. 간혹 누군가에 대해 ‘스타일이 있다’라는 말은 긍정적인 칭찬이지만, 누군가의 춤과 노래, 요리에 대해 ‘누구의 스타일이네’라고 평가할 때는 실재의 것에 미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이렇게 스타일은 이중성을 띤다.
스타일이란 단어는 매일 입에 붙이고 살아도 정작 설명하려면 애를 먹는다. 그래서인지 스타일리스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져야 해요’란 식의 말을 할 때마다, 저들이 말하는 스타일의 개념과 그 구성 요소는 무엇일까 반문해본다.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은 ‘패션은 사라지지만 스타일은 영원하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스타일이란 개념이 매우 장기적인 시간을 갖고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란 뜻이 담겨있다. 부침이 심한 패션의 인위적인 측면에 반해, 스타일은 오랜 시간의 시금석을 통과할 수 있어야 있는 ‘자질’의 문제임을 지적한 것이다. 코코 샤넬은 ‘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반드시 남과 달라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여기에서 ‘달라야 한다’라는 말은 곧 기능적으로 차별화되는 인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환원 불가능한 스타일을 가진 인간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스타일이란 ‘타인이 모방할 수 없는 표현양식을 가진’이란 의미를 넘어, 내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는지를 밝혀주는 서명(Signature)임을 밝히는 말이다. 스타일(Style)이란 단어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기록된 28개의 의미가 말해주듯 복잡한 개념이다. 고대에는 왁스를 바른 서판에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철필을 뜻하던 이 단어는 타인을 설득하는 기술, 수사학과 연결되는 말이었다. 스타일이 작가 개인의 창조성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다. 당시 사람들은 문필가와 화가들의 예술작품 속에 녹아있는 스타일을 분석해내려고 애를 썼다. 스타일을 통해 개인의 성격을 읽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스타일에는 작가의 정신과 감정의 성질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고 믿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들에게 스타일은 곧 자아의식을 가진 존재임을 확증하는 수단이었다.
이런 흐름은 지금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개인들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기 위해선 무엇을 갖추어야 할까? 오랫동안 미술사의 거장들의 작품을 분석하며 스타일 분석에 생을 바친 미술사가 리하르트 볼하임의 생각을 찾아봤다. 그는 요즘 대세인 미니멀리즘 개념을 처음으로 명명한 사람이다. 패션 전문가의 조언보다 그의 글이 와 닿았던 것은 다른 이유가 없다. 스타일이란 개념은 패션의 문제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삶을 예술로 만들기를 소망하며 우리 자신을 생의 걸작으로 빚어내길 욕망한다. 인생이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가 말한 3가지 조건을 주목해보자. 첫째 미적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관심사에 형식과 질서를 부여하려고 노력할 것. 둘째 캔버스에 ‘무엇을 표현할지’ ‘무엇에 관한 내용’을 다룰지’를 반드시 숙지할 것. 마지막으로 스타일이란 작가의 정신적 저장소에서 태어나는 심리적 실제임을 깨달을 것. ‘심리적 실제’란 단어가 잘 안 읽힌다. 쉽게 말해 스타일은 배우고 학습하는 것이 아니란 거다. 기존의 관례와 지시를 따르기보다 자신이 발견한 아름다움의 방식을 내면화할 때 ‘스타일’은 태어난다. 스타일은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옷을 짓듯. 천천히 오랫동안 끊임없이 짓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은 우리의 영혼 속에 각인된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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