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 전문가들 사례 분석
“獨, 기업 내 노동자 대표조직인
사업장평의회 동의 전제돼야
佛은 근로자에 주어진 목표
실현 가능성을 철저히 따져”
독일 하르츠 개혁 등 사회적 타협을 통해 일반해고를 허용한 유럽 국가들은 어떤 절차를 갖춰 저성과자를 해고하고 있을까. 유럽 여러 국가들에서 일반해고의 조건은 매우 엄격하고, 저성과에 대한 입증 책임을 사용자에게 두고 있다고 전문가들을 지적했다.
한국노총이 27일 서울 여의도 노총회관에서 개최한 ‘징계 및 해고 기준과 절차에 관한 외국의 법 제도와 노동자 참여 및 시사점’ 발표회에서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사례를 분석해 이같이 밝혔다.
국내 노동법 체계의 모델인 독일에서는 연방노동법원이 저성과자 해고에 관한 판단 근거를 밝히고 있다. 사용자가 사전 경고 후 재교육 및 직업훈련 배치전환 노력을 기울인 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경우에만 해고가 가능하다는 독일 판례는 우리 정부가 최근 마련한 저성과자 해고 지침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여기에 해고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까다로운 절차를 추가로 두고 있다. 우선 기업 내 노동자대표조직인 사업장평의회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또한 사용자가 근로자의 장기적인 저성과 정황을 명확하게 증명토록 하고 있다. 노동자는 자신의 연령과 숙련도, 업무 환경 등을 바탕으로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법원에 주장할 수 있다. 저성과 해고제도를 악용할 수 있는 빌미를 엄격히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독일처럼 오남용을 방지할 장치가 부족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고용안정성이 평균 이하인 한국에서 일반해고가 도입된다는 것은 해고의 자유화를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노사 화해전문기관인 알선조정중재위원회(ACAS)의 지침에 근거해 저성과자 해고가 이뤄진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사용자가 근로자의 업무 실태 및 현장관리자의 진술 등을 통해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한다는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근로자가 다른 이유로 자신을 해고하려 한다는 의심이 들면, 자신의 성과를 입증할 자료를 사법기관의 일종인 고용심판소에 제출해 대응할 수 있다. 강충호 경상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저성과를 이유로 해고시에는 충족시켜야 할 조건이 많기 때문에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법원이 저성과로 인한 해고가 합당한지를 판단할 때 근로자에게 주어진 목표의 실현 가능성을 따진다. 예컨대 한 점포관리자가 매출 실적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해고됐을 때 관리자에 할당된 목표가 점포가 처한 환경 등을 고려해 달성하기 어렵다면 부당 해고로 판결한다. 사용자가 목표 실현을 위해 적절한 수단을 부여했는지 여부도 주요한 판단의 근거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유럽은 폭넓은 실업급여 지급 등 사회보장제도 덕에 상대적으로 해고에 대한 공포가 적고, 해고되더라도 다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구조”라며 “사회적 여건이 매우 다른 우리나라에서 일반해고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장재진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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