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공무원들은 지난 해 정당 홍보용 현수막을 철거하면서 새누리당 서대문갑 당원협의회와 마찰을 빚었다. 서대문구는 매월 넷째주마다 ‘불법 현수막 없는 거리’를 지정, 단속에 나서고 있는데 불법 현수막을 내건 정당 관계자들이 거세게 반발한 것이다. 서대문갑 당원협의회 측은 그것도 모자라 구청에서 집회를 열고 현수막 원상복구를 구에 요구한 데 이어 문석진 서대문구청장과 담당자를 검찰에 고발까지 한 상태다.
서울 자치구가 불법 정치 현수막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총선을 3개월 앞두고 민간이 내건 현수막뿐 아니라 정당정책 홍보용 현수막이 급증하고 있지만 단속이 쉽지 않아 애를 먹고 있다.
27일 서울시와 자치구 등에 따르면 서울 시내에서 지난 1년간 단속된 불법 현수막 건수는 87만6,463건으로 2014년(72만8,478건) 대비 20% 가량 증가했다. 단속된 불법 현수막 중 정당들이 내건 현수막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울시의회 김광수 의원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청을 중심으로 반경 4km 안을 조사한 결과, 정당과 공공기관에서 내건 현수막이 전체의 74%를 차지했다. 모범을 보여야 할 정당과 공공기관이 오히려 도시 미관을 해치는 주범이 되고 있는 셈이다.
현행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에 따르면 지정된 게시대나 정당 건물이 아닌 전철역, 신호등, 가로수 등에 설치된 정당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다. 문제는 예외조항이다. 단체나 개인이 적법한 정치활동을 위한 행사 또는 집회에 사용하기 위한 경우 비영리 목적의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다.
한 단속 공무원은 “행사나 집회의 경우 정당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대부분은 이미지 광고를 남발한 광고물 수준이고 한 정당이 현수막을 걸면 다른 정당이 경쟁적으로 따라 해 무분별하게 늘고 있다”면서 “중앙당에서 거는 현수막은 당에서 예민하게 반응하고 철거하면 정당에서 정치적인 압박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일선 구청장들도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서대문구 관계자는 “통상적인 정치 활동으로 보장받으려면 적법한 정치 활동을 해야 하는데 철거된 현수막은 정당활동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며 “특정 정당에 관계 없이 모든 정당의 현수막을 정비하고 있지만 반발이 심해 단속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서울시에서도 자치구별 단속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시민 참여를 유도해 단속에 나설 방침이다. 시는 현재 14개 구청에서 시행중인 수거보상제를 올해 25개 구로 확대하고, 다음달 중 수거보상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 행정현수막 위주 단속을 독려할 계획이다. 수거보상제는 불법 현수막을 수거해온 시민에게 장당 2,000원씩, 월간 200만원 한도에서 보상을 해주는 제도다.
김태기 서울시 도시빛정책과장은 “정치권 광고라도 불법이면 정비를 해야만 법의 형평성 등을 유지할 수 있다”면서 “현재 자치구별 단속에는 정치적인 제약이나 압박 등으로 완벽한 단속이 어려운 만큼 시민 참여를 유도해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정당이 내건 현수막은 민간보다 우선적으로 정비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선거철을 앞두고 급증하는 현수막 공해를 막기 위해 정당 명의의 현수막을 게시할 때 읍ㆍ면ㆍ동마다 1매의 현수막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정당법 개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손효숙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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