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성시’(1989)와 ‘쓰리타임즈’(2006)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이름을 알린 대만 유명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侯孝賢ㆍ69)이 신작 영화 ‘자객 섭은낭’의 개봉(내달 4일)을 앞두고 서울을 찾았다. 허우 감독은 ‘비정성시’로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대만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등 대만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으로 오래 활동해왔다.
‘자객 섭은낭’은 허우 감독이 ‘빨간 풍선’(2007)이후 8년 만에 만든 장편영화다. 27일 오후 서울 자양동 한 극장에서 만난 허우 감독은 “8년 동안 대만 타이페이영화제와 금마장영화제 수장으로 일하며 신경 쓸 일이 많아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못했다”고 말했다. ‘자객 섭은낭’은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허우 감독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자객 섭은낭’은 당나라 전기를 배경으로 여성 자객의 사연을 스크린에 풀어낸다. 한 암살 조직에서 자객으로 길러진 섭은낭(수치ㆍ舒淇)이 사부의 지시로 사촌오빠이자 소꿉친구이고 어린 시절 정혼까지 했던 남자를 암살해야 하는 운명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협영화라는 수식을 지녔으나 와이어를 이용한 황당무계한 액션을 없고 정적이고 절제된 몸동작이 스크린을 지배한다. 허우 감독은 “촬영 전부터 중력의 법칙을 중시하려고 했다”며 “사람이 10m 이상 날아가는 식의 무절제한 액션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인 제한을 두어야만 오히려 영화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몰입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자객 섭은낭’은 제작비 50% 가량을 중국으로부터 투자 받아 만들어졌다. 나머지 제작비도 유럽과 홍콩, 일본 등에서 조달했다. 국적이 불분명한 다국적영화인 셈이다. 칸영화제 기간 영화를 소개하는 한 책자에 대만 청천백일기대신 중국 오성홍기가 담겨 대만 국민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허우 감독은 ‘자객 섭은낭’을 중국영화로 보는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냐고 묻자 고개를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국적을 따지는)정치와는 무관한 영화”라며 “당나라를 배경으로 내가 만들어낸 나만의 세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어렸을 적 대만에서 교육을 받을 때 중국 역사와 중국 지리를 함께 배웠다”며 “(대만에서도)중국과 대만을 따로 떼어내서 강조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만 독립 노선을 추구하는 민주진보당 차이잉원(蔡英文)의 대만 총통 당선과 걸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쯔위(周子瑜)의 대만 국기 문제로 중국과 대만의 갈등이 표출된 시기에 구설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는 속내로 읽힌다.
‘자객 섭은낭’은 대만 유명 배우 수치와의 작업으로도 눈길을 끈다. 허우 감독은 ‘밀레니엄 맘보’(2002)로 수치와 첫 호흡을 맞춘 뒤 ‘쓰리타임즈’와 이번 영화까지 세 작품을 함께 했다. 허우 감독은 “처음부터 수치 캐스팅을 염두에 뒀고 수치 캐스팅은 이 영화 제작 과정 중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치는 타고난 대담함과 자신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배우”라며 “상대를 압도하면서도 기를 죽이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도 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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