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에서 뷰티 사업가로, 중국 진출 준비 중이요!
대구 중구에 위치한 ‘민뷰티샵’ 이민주 원장(35)은 당돌한 아가씨로 통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하고야 마는 끈기와 고집 덕분에 붙은 별명이다. 별명처럼 20대 중반에 뷰티샵 보조로 업계에 뛰어들어 특유의 저력으로 얻은 10여년 만에 목 좋은 동성로에 샵을 열고 직원을 7명이나 거느린 ‘원장님’으로 우뚝 섰다. 상도 많이 받았다. 2012 대한민국 국제뷰티아티스트 엠보눈썹 부분 최우수상을 비롯해 2013 국제뷰티아티스트콘테스트 반영구화장ㆍ속눈썹 부분 대상, 2014 국제바디아트콘테스트 반영구화장ㆍ속눈썹 연장 부분 그랑프리를 수상했고, 2015 국제바디 아트콘테스트에서 국제미용가협회 소속 심사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곳에서 ‘꿈’ 다시 떠올려
이 원장은 중환자실 간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대구한의대 간호학과를 졸업해 대구한의대 부속병원 중환자실에서 2년, 지인병원으로 옮겨 또 2년, 총 4년간 중환자실 생활을 했다. 20대 초반인 이 원장에게 사람이 죽어나가는 중환자실은 너무 가혹한 근무환경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 중에는 환자를 위해 우는 가족들에 대한 야기가 없었어요. 중환자실엔 언제나 죽음의 그림자와 함께 흐느끼는 소리가 가득했죠.”
힘이 들 때마다 가슴 한 켠에 접어두었던 꿈이 간절해졌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메이크업과 그림 그리기에 관심이 많았어요. 나를 꾸미는 것도, 남을 꾸며주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힘이 들수록 친구들을 꾸며주던 추억들이 생각났어요. 더 늦기 전에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3교대로 정신 없는 간호생활이었지만 부모님에겐 비밀로 하고 학원에 등록했다. 학원이 서울에 있어서 근무자 끝나자마자 기차에 몸을 싣기 일쑤였다. 장거리 학원 수강에 살이 빠져서 친구들에게 “해골같다”는 말도 들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을 보냈다.
‘실력’과 ‘맞춤형 서비스’로 단골 급증
교육이 끝난 뒤 병원에 사표를 쓰고 친구가 운영하는 샵에 취직했다. 실전 경험이었다.
“첫 출근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샵에 들어서는데,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설렜죠.”
2년 남짓 경험을 쌓고 나서 28살에 가게를 오픈했다. 수성시장 골목 끝 구석진 곳에 자리 잡은 가게였지만, 손님이 많이 찾아왔다. 친구 샵에서 일할 때 오시던 손님부터 새로운 손님까지 첫날부터 좁은 가게가 팍팍하게 들어찼다. 첫째 달 매출이 간호사 월급을 넘었다.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자 실력 발휘에만 마음을 집중할 수 있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수성시장을 거쳐, 신천시장, 지금의 동성로까지 가게를 확장시켰다.
“제 영업비결은 한결 같아요. ‘실력’과 ‘맞춤형 서비스’죠. 최상의 실력을 갖추는 건 당연하고, 유행을 따르기보다 개개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찾아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중국에 진출, K-뷰티의 저력 알리고파
이 원장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목표는 ‘중국시장 진출’이다. 벌써 절반은 성공했다. 입소문을 듣고 샵을 찾아오는 중국 손님들이 조금조금 늘더니, 뷰티 관련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중국인까지 생겼다. 이 원장의 가게에서 경험을 쌓은 중국인 교육생 중 한명이 중국에서 샵을 내기도 했다.
“주변엔 대박 가게로 소문이 났다고 해요. 한국 뷰티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신했어요.”
가게 곳곳 중국어 안내서를 비치하고 틈나는 대로 틈틈이 중국어를 익히고 있다. 험난한 길이 되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차근차근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 뷰티 산업가 전 세계로 뻗어 가는데 한몫하고 싶어요. 지금까지도 잘해왔다고 자부하지만, 앞으로는 더 큰 일을 해야 할 것 같네요. 아름다움을 향해 끝없이 ‘도전’하겠습니다!”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사진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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