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ㆍ천정배 의원의 통합에 결정적 역할을 한 김한길 의원의 정치력이 여의도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대부분 그의 탁월한 설득력을 인정하며 “인재 영입과 정치 공학적 설계만큼은 야권에서 따라올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야권 분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김 의원을 바라보는 상반된 평가는 그의 특이한 정치 이력에서 기인한다. 김 의원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의원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뒤 크게 11번의 당적 변화가 있었다. 이중 2000년대 초 소속 당이 당명을 바꾸거나 소극적으로 야권 이합집산에 동조한 3번을 제외하면, 나머지 8번은 김 의원이 핵심 인사로 탈당ㆍ창당ㆍ합당을 주도한 경우였다.
김 의원 정치적 행보에서 가장 격정적인 해는 2007년이었다. 그 해 김 의원은 열린우리당 탈당(2월), 중도개혁통합신당 창당 및 대표 취임(5월), 중도통합민주당 창당 및 대표 취임(6월), 대통합 민주신당으로 합당(8월)를 강행했다. 한 해 동안 한 번의 탈당과 두 번의 창당, 한 번의 합당이 있었던 셈이다.
2014년 이후에도 김 의원은 민주통합당 대표로서 안 의원과 함께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3월)했다. 이달 초에는 새정치연합이 전신인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안 의원이 주도하는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그리고 전날 김 의원은 신당 세력의 분기점이 된 국민의당과 천정배 의원이 이끄는 국민회의의 통합까지 이뤄냈다.
숨가빴던 김 의원의 행보에 대해 탈당파와 더민주 내 비주류 의원들은 “김한길이기에 가능했다”고 입을 모았다. 비주류계의 핵심 인사는 “2007년 탈당과 합당의 경우, 김 의원뿐 아니라 당시 야권 지도자 모두가 이합집산을 했기 때문에 마치 김 의원을 야권 분열의 원흉으로 보는 건 과도한 처사”라고 했다. 그는 “오히려 (김 의원의) 정확한 정세 예측과 교섭력이 있어 흔들리던 의원들이 비교적 빨리 (여당으로) 이탈하지 않고 야권 내에서 재 집합했다”고 긍정 평가했다. 더민주의 현역 의원도 “특유의 화법과 설득력, 정치세력 간 교집합을 찾고 규합해내는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 의원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그의 정치적 진정성에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념과 정책적 지향점 없이 단기적 정치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그를 따르는 의원들과 함께 야권 분열의 단초만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더민주의 한 주류 측 핵심 당직자는 “김 의원의 능력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는 ‘킹 메이커’가 아니라 ‘데미지 메이커’일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김 의원이 ‘차기 권력만 쫓아 야권에 분열이라는 상처를 지속적으로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김 의원에 대해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는 것은 주류, 비주류로 갈린 현 야권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김 의원이 국민의당에서 디렉터(감독)가 아닌 호남세력, 안 의원 측근 그룹 간 프로듀서 역할을 자임한다면 좋은 평가가 많아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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