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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센 소리' 악기 피아노의 창조자 눈감다

입력
2016.01.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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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1월 27일

피아노를 만든 크리스토포리. 그가 숨진 뒤에야 피아노는 협주회의 주인공이 됐다.
피아노를 만든 크리스토포리. 그가 숨진 뒤에야 피아노는 협주회의 주인공이 됐다.

악기의 유래는 대부분 분명하지 않다. 원시 인류의 삶에 음악이 스미기 전부터 악기는 악기인 줄도 모르고 존재했을지 모른다. 먼저 도구가 있어 소리가 만들어진 뒤에야 음악도 악기도 발전과 개량을 시작했을 것이다. 건반악기의 원형도 기원전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존재감이 드러난 건 바로크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그 무렵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쳄발로)와 클라비코드가 주류였다. 소형 그랜드피아노와 흡사한 외형의 하프시코드는 음의 강약 조절에 한계가 있었고, 클라비코드는 섬세하지만 음량이 적어 연주회 합주용으로 부적절했다. 피아노를 만든 건 17세기 말 베네치아공화국 파두아 출신 악기 장인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tsofori, 1655~1731)였다.

그는 음악이 흥성한 시대를 살았다. 신분과 가산을 물려받지 못한 이에게 악기를 만지는 일은 꽤 그럴싸한 직업이었을 것이다. 그는 연주자가 아니라 악기 기술자가 됐다. 그 선택이 재능 탓이거나 형편 탓이었다면, 그는 좌절감을 느꼈을 듯도 하다. 그 때도 지금처럼 기술자보다는 예술가가 더 주목 받고 우대 받는 시대였다. 그는 30대초에 피렌체의 실력자이자 예술 후원자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에게 고용돼 전임자보다 높은 급료를 받으며 그의 악기들을 관리했다고 한다.

뉴욕 매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피아노.
뉴욕 매트로폴리탄박물관에 소장된 그의 피아노.

그에겐 시간과 기량, 그리고 도전의 열정이 있었다. 음악을 못 하는 대신 음악을 있게 할 악기를 창조하자는 생각. 새로운 건반악기에 대한 수요도 있었다. 그는 18세기 초 건반에 이어진 현을 펠트로 된 해머로 쳐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만들어 ‘여리고 센 소리가 나는 쳄발로(gravicembalo col piano e forte)’라 불렀다. 거기서 ‘여리고 센 소리’ 악기의 개성이 부각되면서 쳄발로에서 독립, ‘피아노포르테’라 불렸다. 피아노는 그 이름의 준말이다. 그의 피아노는 건반 수 54개에 음역도 3옥타브였지만, 현대 피아노는 대부분 88개 건반에 7옥타브가 넘는다. 페달은 18세기 말의 혁신이었다.

페르디난도가 1713년 숨진 뒤 그는 실직했다. 유럽 음악계는 아직 피아노의 진가를 몰랐고, 알더라도 작곡ㆍ연주엔 익숙한 쳄발로가 주로 쓰였다. 피아노가 연주무대의 주역으로 나선 건 18세기 중ㆍ후반부터였다. 1731년 1월 27일 별세한 그는 피아노의 영광을 보지 못했다. 그의 피아노는 3대가 남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과 로마국립악기박물관, 라이프치히대학 악기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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