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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돈이 행복인 사회

입력
2016.01.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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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행복에 경도된 사회풍토

부의 대물림 집착, 물질주의 탓

일상의 행복 찾는 노력 필요해

“나는 사업에서 성공의 정점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 삶이 성공의 전형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일을 떠나서는 기쁨을 거의 느끼지 못했고, 부(富)는 그저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다. … 평생 내가 벌어들인 재산은 가져갈 도리가 없다. 단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촉발된 추억뿐이다. … 자신을 잘 돌보고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시라.”

고등학교 친구가 엊그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메시지라며 반창회 밴드에 올린 글이다. A4 용지 한 장 정도의 장문으로 ‘부와 행복’에 관한 내용이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생활에 쫓기지 말고, 새해에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며 살라는 뜻으로 올린 글인지 마음에 와 닿는다. ‘Steve Job’s Last Words’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지만, 사실과 허구를 가려내는 ‘TruthorFiction.com’은 익명의 작자 글이며, ‘잡스는 마지막에 단지 숨 넘어가는 소리만 냈다’는 전기 작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잡스의 마지막 말이든 아니든 부에 대한 서구의 가치관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마젤란펀드의 창립자 피터 린치. 주식을 모르는 사람도 이름을 아는 워렌 버핏과 쌍벽을 이뤘다는 그도 한창 잘 나가던 46세 생일 파티에서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은퇴했다고 한다.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부와 명성을 단칼에 떨쳐낸 용기가 대단하다. 탐욕, 성공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는 도박만큼이나 끊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서두가 장황해진 것은 한국일보의 ‘저성장 시대 한국인의 행복리포트’시리즈에서 드러난 행복관 때문이다. 우리는 물질주의적 행복관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돈 때문에 불행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돈 때문에 더 행복하다. 늘그막에 여유를 가져야 할 노년층도 돈 때문에 삶이 고달프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트위터에는 뜬금없게 상품권이 행복의 연관어로 등장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고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일상의 탈출에서 행복을 찾는다.

서울대 이재열 사회학과 교수의 말을 빌리면 유교문화권은 현세주의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 물질적 행복에 치우쳐 있다. 다른 문화권과 달리 경제수준에 비해 행복감이 떨어지는 이유라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이 세계 행복지수 순위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질적 행복은 탐욕과 마찬가지로 만족을 모른다. 더 많은 부와 만족감을 끊임없이 원하게 되고, 경쟁에서 뒤처진 한쪽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다. 물질주의적 현세관이 오늘날 국가적인 번영과 성공에 밑바탕이 됐겠지만 개인적 삶의 팍팍함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젊은 나이임에도 딸의 출산에 맞춰 자신의 회사 지분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우리는 서민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돈을 미성년인 손자손녀에게 증여하는 기업 총수들을 보고 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젖먹이, 어린아이가 빌딩을 갖고 있다. 국회에서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일명 원샷법)이 대기업 총수의 편법 상속을 돕는다는 우려로 진통을 겪는 것도 보기 딱하다. 서구 선진국도 이런 논란을 겪었는지 모르지만 이게 우리 수준이다. 부를 사회와 이웃에 돌리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대물림을 하려는 배경에는 뿌리깊은 물질주의적 가치관, 행복관이 짙게 깔려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발전 과정과 경로, 역사가 다르기는 하다. 그러니 우리 사회 수준을 낮게 보고 자조할 일은 아니지만 배울 것은 배우고,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부에 대한 가치관, 우리의 행복관도 이제는 바꿔 나갈 때가 됐다. 내 가족만이 아니라 이웃이나 낯 모르는 사람에게도 배려와 관심을 넓혀야 한다. 일상의 소소함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다. 행복은 일상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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