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발표한 노래 ‘야동을 보다가’
팬들이 직접 나서 뮤비 제작, 편집
가수가 노래하고 팬들이 촬영했다. 지난해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7’ 톱10에 진출해 얼굴을 알린 밴드 중식이의 노래 ‘야동을 보다가’가 특별한 과정을 통해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지고 있다.
‘야동을 보다가’는 지난 2014년 5월 발표된 곡이다. 곡 공개 1년 6개월여 정도가 지나 뒤늦게 뮤직비디오가 제작된 사연은 특별하다. 중식이 팬들이 “뮤직비디오를 찍어주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팬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에 출연한 적은 많지만, 직접 제작에 나서기는 매우 보기 드물다.
25일 중식이에서 베이스를 연주하는 박진용에 따르면 영상 제작 관련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회원 20명이 최근 경기 화성시의 한 촬영장을 직접 빌려 중식이와 ‘야동을 보다가’ 뮤직비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팬들이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 장비를 직접 챙겨왔고,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남자 배우와 메이크업 스태프 섭외도 담당했다.
뮤직비디오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카메라 감독 인건비 등을 포함해 최소 2,000만 원이다. 중식이처럼 소속사 없는 ‘가난한’ 인디 밴드는 엄두조차 내기 힘든 비용. 팬들이 곡을 더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뮤직비디오를 직접 만들어주며 밴드 활동에 힘을 실어주게 됐다. ‘야동을 보다가’의 촬영을 마친 중식이팬들은 편집까지 직접하고 있다. 중식이 팬들은 이번 뮤직비디오를 오는 2월20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내 예술영화상영관 KU 시네마트랩에서 상영회를 열고 처음으로 공개한다. 뮤직비디오 촬영에 참여한 최영인 씨는 “인디밴드 중식이에 대한 응원 차원에서 시작한 일”이라며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동호회 회원들도 창작의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게 됐다”고 의미를 뒀다.
중식이의 뮤직비디오 제작에 나선 동호회 회원들은 지난해 공개된 ‘나는 중식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중식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건설 현장에서 막일을 하며 밴드 활동을 하는 30대 무명 음악인의 현실을 보고 관심을 갖게 됐고, ‘88만원 세대’ 의 슬픔을 노래하는 가사의 매력에 빠져 밴드의 팬이 됐다. 이들은 우연히 본 야한 동영상에서 전 여자친구를 봤다는 ‘야동을 보다가’ 속 가사의 상상력에 흥미를 느껴 이 곡의 뮤직비디오 제작을 자청했다. 밴드에서 노래를 하는 정중식은 “변변한 뮤직비디오 하나 제대로 없었는데 지난해 SNS에서 처음 만난 팬 분들이 뮤직비디오 촬영을 해줘 감사할 따름”이라며 “대충 생각했는데 영상 전문가들의 모임이라 스케일이 남다르더라”며 웃었다.
중식이는 노동자인 아버지가 빚을 내 대학에 보내줬는데도 취직을 못하고 있는 청춘의 현실을 담은 ‘선데이 서울’과, 비정규직으로 살며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젊은 세대의 심리를 표현한 ‘아기를 낳고 싶다니’ 등의 노래를 불러 ‘N포세대 대변자’라 불린다. 4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중식이는 한 야당으로부터 선거 캠페인송 제작 의뢰를 받기도 했다. 중식이를 내세워 청년 유권자들의 표심을 사로 잡겠다는 의도다. 중식이 측은 “한 야당의 선거 캠페인송 의뢰를 받은 건 사실이나 참여 여부는 미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