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영화 ‘오빠생각’의 흥행을 위해 금융사들에 영화예매권을 대량으로 구입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금융사들에 대한 관리ㆍ감독권ㆍ인허가권을 행사하는 금융위가 금융사들에 표 구입을 ‘요청’했다면 이는 ‘강매’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의 ‘갑질’에 또 하나의 사례가 추가되는 셈입니다. 금융위는 즉각 “영화표 구매를 금융위가 조직적 차원에서 강매ㆍ할당한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만,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금융권, 예매권 대량 구입은 관행
금융권이 예매권을 대량 구입하는 사례는 빈번합니다. 저금리 시대에 접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영화나 문화 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실제 대부분의 은행이 이미 여러 차례 영화 제작에 투자를 해 쏠쏠한 수익을 얻기도 했습니다. 1,760만여명의 관객을 동원, 국내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 ‘명량’의 경우 KDB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이 투자를 했습니다.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공연, 예술 등의 제작에도 금융회사의 관심은 높고 투자 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화콘텐츠에 대한 투자는 제작을 지원하는 방식 외에도 예매권 구입으로도 이뤄집니다.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영화나 뮤지컬, 콘서트, 전시회 등의 티켓을 대량으로 구매합니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으로 일종의 프로모션입니다. 고객 관리 차원에서 혹은 신규 고객들에게(물론 VIP들이 대부분이긴 합니다) 감사함을 표현하기 위해 증정하거나 보내는 것입니다.
금융사 프로모션에 숟가락 얹은 금융위
금융권이 이처럼 영업 확대와 고객 관리 차원에서 예매권을 구입해 온 것은 일종의 관행입니다. 대체로 콘서트나 뮤지컬 등은 특정해 초대권 등을 뿌리지만, 영화의 경우 특정 영화를 꼭 집어 예매권을 구입하는 것보다는 영화를 고를 수 있도록 일반 예매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처럼 ‘오빠생각’만 볼 수 있는 예매권을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간혹 해당 금융회사가 투자한 영화면 다를 수는 있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금융위가 금융사들에 ‘오빠생각’ 예매권을 최소 3,000장에서 최대 5,000장까지 사달라고 유선상으로 협조 요청을 했다는 의혹은 곱지 않은 시선을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금융위의 요청으로 구입한 예매권 규모가 3~4만장(10여개 금융사 참여)으로 알려졌는데 영화 순위를 인위적으로 등락시킬 정도인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적어도 금융위가 기존 금융사의 프로모션을 이용해 ‘오빠생각’을 도와주려는 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에 금융위는 해명자료를 통해 “금융회사들이 (오빠생각의 주연인)임시완씨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영화를 응원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빠생각’에 집착한 금융위원장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일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오빠생각’ 시사회에 은행장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 10여명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임 위원장은 “핀테크 홍보대사인 임시완 씨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가 ‘오빠생각’의 홍보대사가 되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시사회장 한 켠에는 핀테크 홍보부스도 설치됐습니다.
금융위원장에게 핀테크는 주요 금융개혁 정책 중 하나입니다. 작년 초 임기를 시작한 임 위원장이 가장 밀고 있는 핵심 정책이죠. 그런 핀테크에 ‘오빠생각’의 주연 배우인 임시완은 홍보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무런 대가 없이 핀테크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으니 고마울 수밖에요. 인지상정이라고, 금융위는 어떤 식으로든 보상책을 마련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을 겁니다.
실제 금융위는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어한다는 금융권 광고 모델을 임시완에게 금융권이 제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광고 모델로 쓰라’는 요청은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임시완이 주연인 ‘오빠생각’이 개봉을 했고, 관객몰이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그 결과 ‘금융권에서 임시완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오빠생각’을 응원해 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자의적 ‘판단’을 바탕으로 금융권에 구매를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 ‘판단’에 동의하지 않은 금융사도 있었던 것이고, 그럼에도 예매권을 대량 구매해야 했으니, 금융위의 ‘강매’ 논란이 불거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지요.
정부 ‘갑질’ 논란 속, 피해자는 임시완
금융위의 ‘예매권 구입 요청’논란은 결국 임 위원장을 필두로 한 금융위 관계자들이 임시완에 대한 고마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금융위가 핀테크 홍보대사인 ‘임시완 띄우기’에 급급했던 나머지 정부의 ‘갑질’ 논란만 부각된 형국입니다. 물론 이런 논란이 간접 홍보 효과를 가져와 ‘오빠생각’의 흥행과 연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한다 하더라도 임시완에게 긍정적이지는 않을 듯합니다. 이미 금융위로 인해 진정성이 의심받을 처지에 놓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잘 나갈 영화인데, 금융위가 버려놨다”, “주가조작 조사하랬더니, 영화 흥행성적 조작하랬느냐”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합니다. ‘오빠생각’을 홍보하려다 임시완에게 예상치 못한 피해를 준 점에서 금융위는 할말이 없을 듯합니다. 아울러 “불필요한 시장 간섭은 최소화하겠다”고 강조해왔던 임 위원장도 이번 영화 예매권 구입 ‘요청’으로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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