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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에 박힌 한국의 행복… 관련어 가장 적고 잣대도 획일적

입력
2016.01.2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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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ㆍ중ㆍ일ㆍ미 비교해보니

한국은 행복도 객관적 기준에 맞춰

일상서 행복 찾는 미국과 달리

여행 등 일상 탈출서 기쁨 느껴

가족, 한국과 달리 美, 日선 불행 연관어

한국, 가족 아닌 2차 집단 “불편”

정부 보는 시각은 일본만 긍정적

한국일보는 4개국 행복도 국제비교 조사에 이어 다국적 빅 데이터 분석도 했다. 한국인의 행복 지형을 보다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한국일보는 숭실대 배영 정보사회학과 교수와 연세대 송민 문헌정보학 교수 팀에 의뢰해 지난 1년간(2015년 1월 1일~12월 23일)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트위터와 뉴스에서 나타난 행복과 불행의 연관어를 분석했다. 한국(유엔 세계행복지수 47위)과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84위), 일본(46위), 합리적 개인주의로 대표되는 영어권의 미국(15위) 4개국이 대상이다. 수집된 데이터 중 1년간 행ㆍ불행이 언급된 트위터 건수는 1,038만여건(단어수 1억 619만여건)에 달했다.

행ㆍ불행 연관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다 나은 삶의 지표((Better Life Index)’를 구성하는 요소인 ▦일 ▦건강 ▦경제 ▦사회적 관계 ▦공동체 5개 범주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경제적 여유’와 ‘건강’은 4개국 모두 행복 연관어로 나와 중요 요인임을 재삼 입증했고, ‘감사’와 ‘사랑’이 만국 공통의 행복어였다.

행복은 과시하고, 불행은 감추고

트위터 분석에서 매우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불행에 비해 행복이 언급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점이다. 게시물이 다른 사람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되도록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드러내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4개국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특히 미국인의 경우 행복(349만여건)과 불행(14만건)이 나타나는 격차가 무려 25배 정도다. 행복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기질을 보여준다. 한국은 행복(216만여건)과 불행(16만여건) 빈도 차가 14배, 중국은 5배다. 의외로 속마음을 숨기기로 유명한 일본인은 행복(212만여건)과 불행(102만여건)이 트위터에 언급되는 빈도 차가 두 배 정도에 그쳤다. 배영 교수는 “불행이 특수한 상황이나 사건이 나타날 때 표현되기 때문에 행복보다 현저히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의 경우 지진, 장기불황 등 지역적 특수성 때문인지 예외적으로 불행을 언급하는 빈도가 높다”고 말했다.

일, 일상에 대한 다른 태도

직장인 강미형(32)씨는 틈만 나면 해외 여행을 다닌다. 최근 2년간 스페인, 대만 등 6개국을 다녀왔다. 강씨는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일상에서는 숨쉴 틈이 없다”며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무리해서라도 해외로 떠난다”고 했다.

희곡 ‘파랑새’에서 “행복은 일상에 있다”고 했지만 한국인은 그 반대다. 콘서트, 여행, 이벤트 등에서 행복감을 표현하고 있었다. 직장, 일, 학교 등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에서 기쁨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괴롭다’ ‘미루다’ ‘두렵다’ ‘견디다’ 등이 불행 연관어로 나와 일 또는 학업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은 것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바쁘다’는 불행이 아니라 행복과 연관돼 나타났다. 상황에 대한 자기주도적 능력 여부가 전반적인 행복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성장 국가인 일본 역시 ‘일’과 ‘피곤’이 불행 연관어로 많이 언급돼 갑갑한 일상에 대한 피로를 드러냈다. 하지만 우리와 달리 ‘발전’과 ‘성공’ ‘달성’ 같은 일과 관련한 단어가 행복 연관어로 나왔다. 목표지향적 사고가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다.

급속한 경제성장 과정에 있는 중국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일이 행복과 연관된 경우가 많았다. ‘부유하다’나 ‘성공’이라는 물질적 요소와 이를 위한 ‘노력’ ‘쾌락’ ‘희망’ ‘축복’과 같은 비물질적 영역의 단어가 동시에 행복과 연관됐다. 지난해 상황을 말해주듯 ‘주가폭락’이라는 단어는 매우 높은 빈도로 불행 연관어로 도출됐다.

사회적 관계 속의 행복과 불행

다국적 빅데이터 분석에서 행ㆍ불행이 극명하게 갈리는 단어가 가족이다. 우리는 가족, 사랑, 감사, 엄마라는 말이 행복과 연관어로 나왔다. 특히 가족이 행복과 연관된 곳은 한국밖에 없다. 한국인의 행복감은 주로 가족 중심의 1차 집단과의 관계에서 파생된다고 볼 수 있다. 행복도 국제비교 여론조사에서 가족 의존성이 높았던 결과가 트위터 분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젊은 여성들이 애인을 부르는 호칭인 ‘오빠’도 행복 관련 빈도수가 높게 도출됐다. 하지만 ‘사람’이나 ‘당신’이 불행의 연관어로 등장해 가족이 아닌 2차 집단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미국과 일본의 경우 가족이 불행의 연관어로 꼽혔다. 미국은 ‘부모’와 ‘가족’이, 일본은 ‘아빠’가 불행과 함께 언급되는 일이 많았다. 미국은 친구가 행복의 연관어로 많이 나왔다. 중국은 ‘나’와 ‘우리’, 그리고 ‘친구’라는 자기중심적 관계의 특성이 행복과의 연관 속에 강조돼 나타났다. 연애나 결혼을 포기한 젊은이들이 많아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은 ‘아내’와 ‘여자친구’는 행복의 대상이지만, ‘결혼’은 불행 연관어로 꼽혔다.

한ㆍ중 ‘국가=불행’, 일본은 행복 연관어

‘정치’ ‘한국’ ‘대한민국’ 등은 한국에서 불행과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젊은 층의 ‘헬조선’ 인식이 그만큼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중국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중국’이 불행 연관어로 나올 만큼 국가에 대한 신뢰가 낮았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정치’와 ‘나라’가 불행이 아닌 행복과 연관되어 국가에 대한 신뢰가 큰 것을 엿볼 수 있다.

대지진 등 자연재해로 많은 인명피해 사고가 빈발한 중국은 ‘재해’ ‘화재’ ‘지진’ ‘폭우’ ‘홍수’가 불행 연관어로 나왔고, 일본은 특이하게 ‘법’ ‘과학’처럼 개인의 일상적 행복과는 관계가 없을 것 같은 개념적인 단어가 행복과 연관성이 높게 나왔다.

일상의 행복 두드러진 미국

미국인들은 동양 3국에 비해 행복 연관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아름다움’ ‘놀라움’ ‘즐거움’ 등 아시아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감정이 행복과 함께 나타났고, ‘껴안다’ ‘웃다’ 등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복이 많이 언급됐다. 훨씬 다양한 차원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특히 미국인은 ‘피자’나 ‘초콜릿’ ‘사진’ ‘강아지’ ‘음악’ ‘드라마’ ‘전자책’ 등 소소한 데서 행복을 표현했다. 4개국 가운데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비중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4개국 가운데서도 행복 연관어가 가장 적다. 물론 최근 유행을 반영하듯 ‘먹다’가 행복과의 연관어로 등장했지만 행복감이 다른 나라에 비해 획일적이고 제한적이다. 배영 교수는 “행복은 주관적 감정과 상태임에도 한국은 객관적 기준에 부합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분석했다.

채지은기자 cj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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