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고유가 때문에 많은 자동차 소유자들이 힘들어했다. 차를 살 때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단연 연비가 꼽혔고, 덕분에 디젤차와 하이브리드차의 인기가 크게 올라갔다.
그러다 최근 몇 달 사이 유가가 뚝 떨어졌다. 연료비에 포함된 세금의 영향으로 하락 폭이 뚜렷하게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우리와 달리 미국은 유가하락이 자동차 소비 패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동차의 나라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생활 깊숙이 자동차가 자리잡은 미국에서는 유가가 시장에 큰 변화를 불러온 사례가 몇 번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유파동이다. 1970년대 초반 1차 석유파동은 큰 차 중심 시장에서 삽시간에 일본 소형차가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이후 2차 석유파동으로 미국 자동차업계는 다시 한 번 몸살을 앓았지만 학습효과 때문에 소비자가 체감한 충격은 1차 파동 때보다 덜했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의 성장과 맞물려 1980년대 초 미국 자동차 시장은 다시금 변화를 맞게 된다.
이 때 본격 등장한 게 현대적 개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험한 지형에서 각종 작업에 쓰는 차라는 인식이 컸던 4륜 구동에 승용차 개념을 접목해 도시에서도 타기 편한 차들이 쏟아져 나왔다. 지프 체로키, 포드 익스플로러 등이 현대적 SUV의 선구자로 꼽힌다. 특히 지프 체로키는 SUV 특징을 지녔으면서 승용차와 같은 구조의 뼈대로 만들어진 첫 차여서 주목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SUV는 비슷한 크기의 승용차에 비해 크고 무거우며 연료도 많이 소비했지만 석유파동 때보다 낮은 유가여서 소비자들이 큰 부담 없이 몰고 다닐 수 있었다. 이후 10년 이상 미국에서는 SUV가 큰 인기를 누리며 주류 차종으로 자리잡았다. 환경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시장 흐름은 고유가 시대가 찾아올 때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가 가시고 유가가 떨어진 요 몇 년 사이 미국에서는 한동안 주춤했던 SUV 판매가 다시 늘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시장 흐름의 큰 변화가 보이지 않지만 SUV 판매 증대를 예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회사들도 있다. 환경과 연비 관련 규제가 강화된 탓에 전기차 등 친환경차가 늘고 있어도 요즘 같은 저유가가 이어지면 SUV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릴지도 모른다.
몽키랩 콘텐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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