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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아베를 향한 저항민족주의 고조, 오키나와 기노완 시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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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아베를 향한 저항민족주의 고조, 오키나와 기노완 시장 선거

입력
2016.01.24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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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의 미군기지 이전 정책에 저항하고 있는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현 지사가 23일 기노완시민들에게 시무라 게이치로 후보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노완(오키나와)=박석원특파원
아베 신조 총리의 미군기지 이전 정책에 저항하고 있는 오나가 다케시 오키나와현 지사가 23일 기노완시민들에게 시무라 게이치로 후보 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다. 기노완(오키나와)=박석원특파원

일본 오키나와(沖繩)현이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놓고 사활을 건 선거전을 치르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후텐마 미군 비행장이 위치한 기노완(宜野彎)시 시장 선거로 여론이 찬반으로 갈리면서 내부갈등과 불신이 드러났다. 24일 끝난 선거결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지원하는 현직 시장이 당선됐지만 반대진영은 미군기지의 현 내 이전을 ‘류큐 민족’에 대한 차별로 받아들이고 있어 정국불안 요인이 쌓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선 사키마 아쓰시(佐喜眞淳ㆍ51) 현 시장과 신인인 시무라 게이치로(志村惠一郞ㆍ63) 후보가 나서 사실상 중앙 정계의 대리전을 치렀다. 둘 다 무소속 후보였지만 사키마 후보가 연립여당인 자민ㆍ공명당의 전면적 지원을 받은 반면, 시무라 후보는 아베 정권과 대립중인 오나가 다케시(翁長雄志) 오키나와현 지사가 지지하는 현청 간부 출신이다.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격전이었다.

기노완시 시민들은 주택가에 인접한 후텐마 기지의 소음과 사고 위험으로 긴 세월 피해를 겪어왔다. 현직인 사키마 시장은 아베 정부의 의도대로 후텐마 기지를 이웃 나고시의 헤노코 연안으로 이전하는데 동조하는 반면, 시무라 후보는 기지를 철폐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오키나와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점을 내세웠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3일 나하공항(那覇空港)에는 근래 드문 한파가 닥쳤다. 강한 바람에 비까지 몰아쳐 대낮부터 어두웠다. 기노완으로 이동하는 동안 택시운전사(40)는 “미군기지는 옛부터 나라에서 정했으니 따라가자는 여론은 현 시장을 지지하고, 전쟁에 반대하고 미국을 싫어하는 세력은 야권 후보에 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젊은이들은 전쟁에 대해 몰라 노년층이 주로 아베 정권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여권 후보 사무실은 외부출입을 통제한 채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자민당 거물인 니카이도 도시히로(二階俊博) 총무회장이 후보를 면담한 뒤 심각한 표정으로 황급히 떠났다. 선거캠프를 총괄하는 히가 타이시(比嘉大志)는 “상대후보가 후텐마 기지를 현 밖으로 옮겨야 한다지만 민주당 정권 때 이미 얘기해봤지 않느냐”며 “우리는 기노완에서라도 위험한 후텐마 기지를 빼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오키나와 문제에 협조적인 대가로 정부로부터 받는 혜택을 강조했다. 실제로 디즈니랜드 유치 약속이 지역건설업계나 부동산 보유층을 들뜨게 하고 있다. 50대 자원봉사자는 “현 시장 재임시 관광크루즈선이 자주 들어와 경제가 살아났다”며 “디즈니랜드까지 유치하면 하와이처럼 발전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사키마 후보 측은 경제발전 실리론을 앞세워 표심을 공략했다.

야권 후보 사무실에는 사람들이 북적대며 활기가 돌았다. 조심스러운 현직 시장 캠프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건강하게 힘내자 기노완회’ 이하 요이치(64)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기지가 주택가 주변에 있다”며 “미군기지 정책에 70%가 반대하는데도 최근 미군 오스프리 헬기 21대가 배치됐다”고 격분했다. 그는 “일본도 선진국인데 한 지역에 차별적으로 군사 기지를 몰아넣는걸 다른 선진국민이 보면 납득하겠냐”며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오후 3시 시민주차장 앞에서 열린 시무라 후보의 마지막 유세에는 비가 쏟아지는데도 2,000여명이 집결했다. “간바레(힘내라), 카테르조(이길 수 있다)~ 카테르조~” 연사들은 “당근을 걸어놓고 돈으로 유혹하는 게 자민당이냐” “디즈니랜드 따위의 거짓말에 놀아나지 말자”는 구호를 쏟아냈다. 2014년 1월 나고시 시장선거, 11월 오키나와현 지사선거,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기지 이전 반대파들이 연승을 거둔 기세가 엿보였다.

유세장엔 저항민족주의 기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한 노인이 연단에 올라 “(오키나와는) 일본 남단의 섬이 아니라 아시아의 관광중심지”라고 목청을 높였고, 류큐민족의 정체성을 부추기는 전통악기가 울려댔다. 오나가 지사가 마이크를 잡자 극우집단의 방해차량이 나타나 “일본에 대한 모독을 그만두라”며 과거 일본군 군가를 트는 등 충돌이 벌어질뻔했다. 시무라 후보는 “미군 비행기가 민가에 떨어지는 위험을 왜 우리에게 강요하냐”며 “기지 이전을 나라가 결정할 일이라는 아베 정권의 주장은 오키나와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날 저녁 사키마 후보 측 마지막 유세에선 시마지리 아이코(島尻安伊子) 오키나와ㆍ북방영토 담당장관이 지지연설을 하는 등 보수진영이 총궐기했다. 시마지리 장관은 “9만7,000시민의 급식 반값 지원, 기업유치를 누가 해결했느냐“며 “정부와 함께 일해나갈 사람은 현직 시장 후보”라고 힘을 실어줬다. 이어 지역유지들이 연단에 올라 “반대만 일삼는 공산당들은 장난치지 말고 당장 나가라”며 “일본은 계속 전진해야 한다”고 외쳤다. 목이 잠긴 사키마 후보는 “70년간 이어진 위험한 기지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없다”며 “정부에 부탁해 이곳에 기지를 고정화하는 것을 막겠다”고 주장했다. 한 40대 지지자는 기자에게 “우리는 류큐 민족의식보다 오키나와현민 의식이 강하다”며 “1년 반쯤 전부터 야당 쪽이 오키나와 독립얘기까지 부추기며 주민 마음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분노했다.

기노완(오키나와)=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사키마 아쓰시 후보가 23일 저녁 우에하라 교차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다. 그 왼쪽에 부인과 시마지리 아이코 오키나와ㆍ북방영토담당장관이 함께 연단에 올라가 있다. 기노완(오키나와)=박석원특파원
사키마 아쓰시 후보가 23일 저녁 우에하라 교차로에서 마지막 유세를 하고 있다. 그 왼쪽에 부인과 시마지리 아이코 오키나와ㆍ북방영토담당장관이 함께 연단에 올라가 있다. 기노완(오키나와)=박석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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