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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협상에 불가역은 없다

입력
2016.01.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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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선언했지만 곳곳에서 가역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일 양국은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고 선언했지만 곳곳에서 가역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협상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 회담 일정은 공교롭게도 지난해 성탄절에 발표됐다. 그리고 사흘 만인 28일 결과가 도출됐다. 일본측 협상 대표였던 기시다 후미오 외교부 장관은 당일로 청와대를 방문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전하고 한국 정부는 이로써 ‘불가역적 협상’의 1단계 조치가 완료됐음을 선언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을 받아냈다”고 평가하며 협상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도 최근 신년 시정연설을 통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협의를 통해 오랜 현안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단언했다.

많은 궁금증이 떠오르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아무래도 ‘불가역성’이다.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일’이라는 물리학의 전문 용어는 북핵 6자 회담을 통해 익숙한 일상어가 됐다. 북한 핵을 완전히 폐기하도록 한다는 데 방점을 찍으면서 강조한 ‘irreversible’이라는 단어는 순전히 외교 협상장의 언어다. 그런데 과연 위안부 문제라는 역사적 현안을 외교적 수사가 난무하는 협상을 통해 되돌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들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외교 현장의 몇 장면만 들춰보아도 완전하고도 불가역적인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한미 FTA가 타결된 과정을 보면 분명해진다. 한미 양국은 2006년 6월부터 8차례 협상을 통해 2007년 4월에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나 조지 부시 행정부 모두 못마땅했다. 노 대통령은 서비스 시장 개방 수위가 아쉬웠고 부시 대통령은 자동차와 쇠고기 문제로 미적거렸다. 그러는 사이 바통은 이명박-오바마 조로 넘어갔고, 한국에서 정권의 명운을 위태롭게 하는 촛불시위가 벌어진 끝에 재협상을 거쳐 2011년 의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

하물며 여전히 평가가 진행 중인 역사적 현안을 단 한 번의 외교 협상으로 최종적이고도 돌이킬 수 없도록 마무리한다는 것은 난센스다. 더욱이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물질적 보상보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진실되고 진정성 어린’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①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및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표명 ②10억엔의 위안부 재단 지원금 출연, 단 두 가지 조건을 전제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선언해 버렸다.

하지만 이번 협상이 가역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미 도처에서 확인되고 있다. 우선 아베 총리의 최근 도발적 언사는 ‘사죄와 반성을 전제로 한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협상 구조를 위협하고 있다. 아베는 지금껏 본인의 입으로 사죄와 반성을 한 적이 없는 것은 물론, 18일 참의원 예산위에 출석해서는 “정부가 발견한 자료 중에서 군과 관헌에 의한 이른바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입장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며 도리어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특히 소녀상을 둘러싼 논란은 불가역적이라는 이번 협상의 최대 취약점이다. 양국 장관의 발표문을 보면, 소녀상 대목은 윤병세 장관의 언급에만 등장한다. 일본 정부는 일언반구도 없는데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ㆍ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적절히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선제적으로 밝혔다. 이를 두고 ‘소녀상과 10억엔’ 연계설이 나오는 가운데 외교가에서조차 말이 아닌 행동(action)을 주고받는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떠올리고 있다. 한국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보장하지 않았는데 일본이 10억엔 출연이라는 행동에 나섰겠느냐는 반문인데, 소녀상을 이전하지 못하면 협상은 원점이 된다는 얘기다.

흔히들 역사는 되돌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른바 불가역성이다. 하지만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도 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똑같은 과오를 반복한다는 경구일 것이다. 굳이 위안부 재협상에 나서라는 요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협상의 구조와 현실을 보면 벌써 반(半)가역의 상황이 되지 않았나 싶다.

김정곤 국제부장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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