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대만의 정치는 많이 닮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선 진보(노무현-천수이볜)와 보수(이명박-마잉주) 정권에 이어 이번에는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의 총통선거 승리로 나란히 여성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지도자 정치역정도 비슷하다. 가난한 집안서 태어나 변호사를 거쳐 민주화 운동으로 명성을 쌓았고(노-천), 서울과 타이베이 시장을 거쳐 똑같이 경제살리기 공약으로 CEO 대통령 별명을 얻었다(이-마). 민주화와 경제발전에서 비슷한 길을 밟은 두 나라는 동서(한국)와 남북(대만)으로 갈린 지역감정도 흡사하다.
▦ 그래서인지 차이 당선자도 한국에 관심이 많다. 한류와 김치를 좋아하고 한국과의 교류를 강조해왔다. 2012년 총통 선거에서 진 뒤 그 해 말 한국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자 “나에게 격려와 같은 느낌을 준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중국판 자서전에는 한국의 정권교체를 평가하는 추천사를 직접 썼다. 민진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2008년 주석에 취임해 난파 직전의 당을 재건한 그는 2004년 천막당사로 탄핵 후폭풍을 극복하고 마침내 대권을 부여잡은 박 대통령에게서 배운 게 많았을 것이다.
▦ 차이 당선자는 당시 박 대통령의 승리를 극진히 축하했다. 축전을 보냈고, 취임식 때는 이례적으로 국회의장을 포함한 대표단을 보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이런 차이 당선자에게 아직 공식적인 축하인사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백악관 대변인의 축하 논평을 내고,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마음으로부터 축하한다”고 한 것과 대조적이다. 1992년 단교 이후 총통 당선자에게 축전을 보낸 전례가 없다고 하지만, 적대국가도 아닌 가까운 이웃의 새 지도자 탄생을 모른 체하는 건 정치논리를 떠나 예의가 아니다.
▦ 차이의 승리가 유력시되던 지난달 미국은 대만에 18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무기판매 결정을 발표했다. 대만 안보를 위해 방어용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대만관계법에 따른 것이지만, 2011년 이후 4년 만의 무기수출 재개여서 파장이 작지 않다. 미중이 으르렁대는 와중에 대만 독립을 강령으로 친(親) 미국ㆍ일본 스탠스를 취하는 민진당의 집권과 무관치 않다. 그렇잖아도 쯔위 사건에서 보듯 대만의 국가정체성 문제가 우리의 민간분야로까지 파고드는 상황이다. 언제까지 미ㆍ중 사이에서 눈치만 보고 있을 건지….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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