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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샴쌍둥이

입력
2016.01.2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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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태국이지만 당시엔 샴왕국이라 불리던 곳에서 1811년 ‘창’과 ‘엥’이라 불리는 두 형제가 태어났다. 그들은 연골에 의해 가슴뼈가 붙어있고, 간이 하나로 결합되어있는 신체구조를 갖고 있었지만 완전히 독립적이었다고 한다. 헌터라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장사꾼이 대중에게 그들의 기형적 모습을 보이며 돈을 벌 요량으로 이들을 사들여 여기저기를 끌고 다니는 기구한 운명에 놓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1839년 미국에 정착하고 각기 결혼하여 창은 11명의 자식을, 엥은 10명의 자식을 낳아 살면서 주변의 존경을 두 몸 가득 받았으며 한때는 번창한 사업가이기도 했단다. 1874년, 즉 64세의 나이에 평소 심하게 술을 먹으며 건강이 악화되던 창이 폐부종으로 수면 중 사망하자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놀라 혈관경색으로 엥 역시 세시간만에 사망하였다. 건강한 엥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주장이 있다지만 분명한 것은 샴쌍둥이의 경우 한 쪽 몸이 죽자 다른 쪽 몸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2012년 대선에서 정점을 찍다 좀처럼 회생되고 있지 않은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의 담론.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인 김종인씨가 더불어민주당의 구원투수가 된 이후 경제민주화 담론에 다시 불이 지펴질 것 같다. 그는 헌법 112조 2항의 이른바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한 인물로서 이를 구현할 수만 있다면 손을 내미는 당과 정치인을 별로 따지지 않은 신념의 인물로 비쳐진다.

경제민주화. 이는 자본주의 핵심인 시장메카니즘의 발동단계에서 공정과 형평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기실 시장은 가장 합리적인 것 같지만 잔인하고 때론 폭력적이다. 정당성은 가장 취약한 덕목이다. 자본주의의 기본인 사유재산제와 자유계약, 자유경쟁이 발현되는 가장 핵심적인 곳이 시장이지만, 여기서의 결과가 얼마만큼 정당한 지는 아예 설명을 회피한다. 따지지 않으려 한다.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시장’이기에 그 자체가 이미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설명이 주류경제학의 입장이자 시장에서 우위를 점한 자들의 관점이다. 과연 그렇게 넘어갈 일인가.

개인적으론 한없이 인자하고 자애로운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이웃이지만, 그가 회사를 경영한다면 한 푼의 임금이라도 덜 주고 가차없이 해고를 행하여 더 많은 이윤, 더 큰 기업을 만들어가려는 자본가의 생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최저임금제를 사회적 기구에서 정하고, 노동자가 그의 밥줄인 일터에서 맥없이 쫒겨나지 않도록 부당해고 방지나 노동자 단결권을 법이 보장하는 것은, 적절한 사회적 통제가 없다면 자본가의 기반인 노동자의 존재가 없어진다는 역사적 교훈에서 온 필연이었다.

지금 한국경제는 묘하게도 민주화와 신자유주의의 합성에 의해 자본과 경제권력의 힘이 노동과 여타 권력에 비해 현저히 비대해졌고 이것이 사회위기와 불안의 근원이다. 이 점에서 이들 간의 균형을 꾀하는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이다. 서구에선 엄청난 피와 소요, 갈등을 통해 얻어진 것을 우리는 법과 제도, 정치의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 그들과 다르다. 성공하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기에 다행이지만 자본과 시민의 성숙한 인식이 없다면 그 가능성도 그만큼 없는 것이기에 현재 경제민주화 담론이 갖는 미래는 불안하다.

그 불안함은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어차피 자본과 노동, 생산과 분배가 맞부딪치는 시장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복지를 통해 사후적으로 공정과 형평을 맞추려는 노력이 꼭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는 복지국가의 전제이지만 또한 복지국가는 경제민주화의 최후보루이다. 그래서 그 둘은 샴쌍둥이다. 김종인씨의 등장으로 경제민주화 담론이 더 부각되고 있는 시점에서 복지국가 담론 역시 균형 맞게 강조되어야 함은 샴쌍둥이의 운명에서 보면 지당하다. 엥이 살기 위해서는 창 역시 건강하게 함께 살아있어야 한다.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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