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입찰에 ‘들러리’로 참여한 건설사는 발주처로부터 받은 설계보상비 전액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설계보상비는 입찰에 탈락한 회사에 설계비 중 일부를 보상해주는 것으로, 이번 판결로 발주처가 낸 다른 유사 소송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 윤강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쟁입찰을 방해한 행위로 챙긴 부당이득을 반환하라며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3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LH는 2011년 5월 초 광주ㆍ전남 혁신도시 조성에 따른 수질복원센터 시설공사의 설계ㆍ시공 일괄입찰 공고를 냈다. K사는 3개 업체와 컨소시엄을 형성해 사전심사신청을 냈지만 경쟁 입찰자가 없어 유찰되자 포스코건설에 입찰 들러리를 서 달라고 요구했다. 포스코건설은 이에 포스코엔지니어링(옛 대우엔지니어링) 등과 컨소시엄을 짜 사전심사신청을 냈다. 이후 K사와 포스코건설은 사전심사적격자로 선정돼 기본설계를 제출했고, 결국 K사가 낙찰자가 돼 431억원의 공사계약을 따냈다.
탈락한 포스코건설은 2012년 4월 LH에 설계보상비 지급을 요구했지만 거절되자 민사소송을 제기해 이듬해 11월 3억 2,000여만원을 받아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2014년 3월 포스코건설의 들러리 입찰사실을 밝혀내고 과징금 19억5,900만원을 물렸고, K사에도 14억1,000만원을 부과했다.
재판부는 “현재 K사가 공사를 진행하는 점 등에 비춰 입찰을 무효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들러리 행위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므로 불법행위에도 해당한다”며 포스코건설에 배상 책임을 물었다. 포스코건설 측은 “발주처의 설계기준에 부합하는 설계로 점수를 받았기 때문에 LH의 손해와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포스코엔지니어링에 대해서도 “들러리 입찰 사실을 알았음에도 방조했다”며 공동으로 책임질 것을 주문했다.
손현성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