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차 핵실험 도발을 단행한 지 나흘이 지난 10일. 남북 간 교류를 주도하는 우리측 민간단체들 사무실 앞으로 한 통의 팩스가 날라왔습니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가 우리 측 민화협과 59개 대북교류단체로 이뤄진 북민협에 보낸 것으로, 올 한해 남북간 사회 문화 교류를 재개하고 잘 진행해보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핵 실험 이전부터 진행돼 온 금강산 산림방제사업과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 사업 등을 비롯한 각종 학술 체육 교류와 관련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어가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우리 단체들이 핵 실험 이후 달라진 한반도 정세를 감안해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자 북한은 핵실험은 미국을 향한 자위권 행사 차원이며, 남한과는 관계없다는 취지의 팩스를 다시 보내오며 구애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부 당국에 따르면 일부 민간단체에게는 방북 초청장까지 발송했다고 하니 북한은 자신들이 저지른 핵실험 정국과 무관한 다른 세상에 사는 듯 보입니다.
여느 당국자의 표현대로 ‘따귀를 때려놓고 사이 좋게 지내자’는 북한의 저의는 무엇일까요.
전적으로 북한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북한은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대로 수행했을 따름입니다. 북한의 설명대로, 핵실험은 명백한 자위권 행사이고, 도리어 핵 능력을 제고시키는 조치로 한반도의 안정적 평화 유지에 기여한 만큼 이제는 남북 교류에 나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하등 문제 없다는 식입니다.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비난이 커지고 있지만,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자신들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선언인 셈이죠. 핵개발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굳이 노림수를 찾자면 탐색전입니다. 유엔의 안보리 제재 논의가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남측의 태도가 얼마나 강경한지 여론을 떠보며 동태를 살피려는 심산입니다. 정부와 민간 단체 간의 갈등을 유발해 이간질 시키려는 계산도 담겨 있습니다. 북핵 대응에 대해 강경일변도로 나아가선 안 된다, 그럴수록 남북 교류의 끈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몰이에 나서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8ㆍ25 합의 이행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명분 쌓기용’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이 마무리 되고 북한의 필요에 따라 대화 공세에 나설 즈음 자신들은 민간교류 등을 통해 대화의 끈을 지속하려고 노력했는데 남측이 받아주지 않았다며 책임 전가에 나서기 위한 포석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이번 4차 핵실험이 앞선 1,2,3차 때와 달리 북핵 실험 능력이 한층 고도화돼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찾기 힘든 만큼 이전과 다른 대응을 취해야 한다는 기류가 분명합니다. 북한의 민간교류 협력 제안 사실이 전해진 21일에도 핵 실험 직후 표명한 남북 교류협력 사업은 잠정 중단한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고, 민간단체들이 접촉 신청을 해오더라도 불허한다는 방침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제3국 등 장소 불문하고, 직접적인 접촉은 원천봉쇄 한다는 겁니다.
북한이 어떤 생각으로 남북 교류 제의에 나섰는지는 몰라도 일단 자신들이 처한 현실부터 제대로 직시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정치부 강윤주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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