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등 스트레스 받은 부모
아동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
인천 소녀ㆍ부천 초등생 아버지도
무직 상태로 집에서 게임하며 지내
개인 교화 아닌 지역사회 차원서
경제 환경 개선 방식으로 접근해야
대구의 한 대학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A(70)씨는 월급 90만원으로 가족 7명을 부양했다. 치매에 걸린 부인과 정신질환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두 딸, 이혼 후 손녀 두 명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온 아들까지 모두 경제적 무능력자였기 때문이다. 부인의 치매가 악화되고 생활고도 심해지자 A씨는 초등학교 2학년, 5학년이었던 손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이들을 학교에 안 보내는 것은 아동학대(교육적 방임)라며 A씨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외부 사람들이 개입하는 것이 싫다며 면담을 거부했다. 지금까지 10여 차례 직장을 옮겨 다니다 하는 일 없이 게임만 하며 지내는 아이들의 아버지(41)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만 했다. 담당 상담사는 “가족 구성원의 이혼, 치매, 정신질환, 경제적인 문제 등 때문에 아이들은 1년 이상 학교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며 “특히 할머니의 치매로 가족간 갈등과 스트레스가 상당히 높은 상태”라고 말했다.
◆학대 피해 아동 경제상태 (단위: %)
◆아동학대 가해자 직업(단위: %)
<자료: 보건복지부 2014년 아동학대 전국 현황>
A씨 가족의 사례에서 보듯이 빈곤은 아동학대의 ‘위험 요인’이다. 빈곤한 가정에서 모두 아동학대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가정보다 아동학대가 일어날 확률이 높다. 보건복지부의 ‘2014년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피해아동 1만여명 중 23.3%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였다. 피학대아동 4명 중 1명은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이란 얘기다. 가해자 1만여명의 직업을 조사해 보니 무직 32.4%, 단순노무직 16.5%로 가해자 절반(48.9%)은 소득이 아예 없거나 매우 낮은 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빈곤이 쉽게 아동학대로 이어지는 이유를, 부모가 취업을 하지 못한 상황, 생활고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를 아이에 대한 폭력행위로 표출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뿐만 아니라 빈곤가정은 부모가 모두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1년간 ‘부모로부터 심하게 맞은 적이 있다’는 항목에서 일반 아동은 평균 0.3점(높을수록 맞은 빈도가 높음)이었지만, 저소득가구 아동은 0.5점이었다. 방임 역시 저소득가구 아동은 0.6점으로 일반가구 아동(0.2점)보다 3배나 높았다.
이 같은 방임과 신체ㆍ정서 학대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2월 발생한 인천 소녀 학대 사건과 최근 부천 아동 시신 훼손의 가해자인 아버지는모두 직업이 없이 집에서 게임만 하며 지냈다. 아동학대 가해자 5명 중 1명은 ‘사회ㆍ경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고립돼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아동학대 방지는 가해자 개인을 교화시키는 차원이 아니라 아동과 가족을 둘러싼 사회ㆍ경제적 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가해자의 기질에 문제가 있으니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해야 한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 환경적 요인의 중요성이 밝혀지면서 개인에 대한 질책보다는 빈곤 한부모 가정 등 환경적 문제를 사회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아동권리학회 학회지에 실린 ‘OECD 국가의 사회경제적 특성과 아동학대 발생과의 관계에 관한 연구’(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불평등과 아동빈곤을 방치하는 국가에서는 학대로 아동이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다양한 가족지원 정책으로 불평등과 아동빈곤을 낮춘 국가에서는 학대로 인한 사망이 적었다. 단순히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과 가족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아동학대를 막는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김정미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사업본부장은 “학교, 지역아동센터, 주민센터, 이웃 등 지역사회가 함께 움직이며 저소득층 부모가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도록 양육, 상담, 교육 등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승환 울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번 인천ㆍ부천 학대사건처럼 저소득층 부모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것도 학대의 중요한 요인”이라며 “저소득층 아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여러 시스템에 대한 안내를 강화하고, 접근성을 검토하는 등 정확한 실태파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ankookilbo.com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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