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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비나리 달이네 집(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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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 첫 책] 비나리 달이네 집(2001)

입력
2016.01.2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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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도서출판 낮은산 대표

권정생. 그 이름만으로도 몇 장면이 떠오른다. 안동 빌뱅이 산 밑 오두막 마당에서 작게 “선생님, 권정생 선생님”하며 부르던 일. 그러면서 올려다보았던 작은 방문 위에 걸려 있던, 두꺼운 종이에 볼펜을 여러 번 겹쳐 쓴 권정생이라는 그의 글씨. 잠시 뒤 그 아래로 “예”하며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까지.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꼭 권 선생의 책을 첫 책으로 내고 싶었다. 권 선생에게 간곡하게 편지를 썼고, 며칠을 기다려 전화를 했다. 그 전에도 몇 번 뵌 적이 있었는데 권 선생은 오랜 시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할 만큼 늘 몸이 아팠고, 글 쓰는 걸 힘들어했다. 사정을 알기에 전화를 하면서도 혹시 “죄송해요, 제가 요즘 많이 아파서 못 쓸 것 같아요” 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어왔다. “죄송해요. 아직 못 썼어요. 써 볼게요.” 글을 써달라는 작은 출판사의 간절함을 선생이 읽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곤 아직 못 써 미안하다며 써 보겠다 한 것이다. 아이구 죄송하다니요, 그 며칠 사이에 무슨 글을 쓰신답니까. 그러고는 오래지 않아 편지지에 쓴 원고가 왔다. 낮은산의 첫 책, ‘비나리 달이에 집’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권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이태 전에 써 둔 유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그 세 사람 가운데 한 분이 정호경 신부다. 유언장에는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비나리 달이네 집’의 주인공은 비나리라는 마을에서 유언장에 등장하는 정호경 신부와 함께 사는 강아지 달이다. 덫에 한쪽 다리를 잃어 다리가 셋인 달이는 신부님을 아빠라 부르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이는 꿈에서 다리가 온전히 네 개가 되어 아빠와 함께 “꽃들이 하얗게 빨갛게 노랗게 마구 피어”나는 “하늘엔 흰구름도 둥둥 떠다니”는 풀밭을 행복하게 뛰어다닌다. 권정생은 평생 이런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라고 말한 그의 유언은 이렇게 끝난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부디 세상에 평화가 깃들고, 그가 환생해서 예쁜 연애도 하고, 아이들에게 다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권정생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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