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여당 저격수인 박지원ㆍ박영선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잔류 여부를 두고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박(朴) 남매’라 불릴 정도로 찰떡 호흡을 자랑하던 이들은 22일 더민주 선대위원회 합류(박영선), 제3지대 야권통합 운동(박지원)을 위해 정치적으로 이별을 한 것입니다. 다만 이들은 서로에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멀지 않은 시기에 야권통합이 이뤄질 것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박 남매 결성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란히 18대 국회에서 법제사법위원회에 배정돼 옆 자리에 앉게 된 이들은 초반부터 굵직한 법조 이슈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으로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공동 전선을 펴 낙마라는 결과를 도출했으며, 같은 해 한국일보가 최초 보도한 효성그룹 비자금 사건을 국정감사에서 이슈화시켜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의 철저 수사 지시를 이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이듬해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한층 더 공고해진 호흡으로 김 후보자의 낙마에 결정적인 공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박 남매의 협공은 계산되지 않은, 두 정치인 특유의 스타일에 맞춘 분업형 저격에 가까웠습니다. 보통 질의 순서가 앞인 박영선 의원이 팩트를 기반으로 송곳처럼 피감기관(검찰)이나 인사청문회 후보자들을 몰아세우면, 박지원 의원이 부드러운 화법으로 전체 사건을 재정리한 뒤 핵심 내용에 대한 답변과 자료를 재요청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대다수의 법조인과 공직 후보자들은 처음에 “수사 중인 사안이다”, “확인해보겠다”고 방어했지만, 이내 박 남매의 협공에 혀를 내두르며 답변을 하던 장면들은 18대 국회 내내 이어졌습니다.
이후 박영선 의원이 법사위원장을 끝으로 기획재정위원회로 상임위를 옮기면서 공개석상에서의 박 남매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박 남매는 당내 여러 혼란 속에서도 계파와 무관하게 정치적 논의를 하는 방식으로 유대를 이어갔습니다. 실제로 박지원 의원은 호남 정치의 명맥을 유지ㆍ발전시키는 활동에, 박영선 의원은 재벌개혁 등 경제 민주화 이슈 발굴에 각각 전념하면서도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박 남매의 노선 차이는 문재인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장이 되면서 발생했습니다. 지난해 2ㆍ8 전당대회에서 아깝게 문 대표에게 패배한 박지원 의원은 호남의 대표성을 기반으로 문 대표의 사퇴를 지속적으로 요구했고, 박영선 의원은 2014년 당 비상대책위원장 직을 내려놓은 뒤 철저히 후방에 머무르며 추후를 도모했기 때문입니다. 박 남매 모두 비주류로 분류되지만, 박지원 의원은 적극적 반대 세력으로, 박영선 의원은 비판적 관망 세력으로 갈라선 셈입니다.
결국 이들은 이날 박지원 의원의 탈당으로 당적을 달리 하면서 남매의 이름을 반납했습니다. 박영선 의원은 전날 박지원 의원이 탈당 결심을 굳혔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대중 당원들이) 박 남매가 헤어지면 안 된다는데요. 슬픕니다”라는 문자로 끝까지 설득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이에 박지원 의원은 “우리 좋은 것만 생각하고 앞으로도 얘기를 자주 합시다. 남매가 헤어진다고 헤어지는 게 아닙니다. 다음에 다시 만납시다”는 진심이 담긴 답장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적 이해관계가 달라졌지만, 비방과 험담보다는 야권 정치인으로 동업자 정신을 끝까지 잃지 않은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박 남매의 재회 여부와 시점을 지금 예측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박지원 의원이 이날 밝힌 탈당의 변에서 그 시간을 최소화하려는 그의 의지만 읽을 수 있을 뿐입니다.
“나는 분열된 야권을 통합하고 모두 승리하기 위해 잠시 당을 떠납니다. 지금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하지만, (야권 정치인이라면) 통합과 총선승리, 정권교체라는 최종목표가 같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다시 만나 결국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통렬한 비판과 감시. 대한민국 사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야당이 해야 할 역할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박 남매가 다시 하나의 모습으로 더욱 노련하면서도 야당다운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봅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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