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새해가 밝은지 3주 정도가 지났다. 달력은 2016년이지만 음력으로 치면 아직 2015년이다. 이 맘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전화를 해서 “정미야 뭐 하노, 니 내 캉 콧구녕에 바람 쏘이러 안 갈래”하는 언니가 하나 있다. 그는 점(占)을 사랑한다. ‘아직은 새해가 안 되었으니 그간의 일은 액땜이라 생각하자. 신년 운수를 봐야지’ 맞춤 형 설을 쇠는 여자에게 1월 중순은 설날을 퉁 치기 참 좋은 시기이다.
그의 점(占) 사랑은 10년 전쯤 시작되었다. 다급한 목소리로 함께 같이 가줬으면 하는 곳이 있다고 전화가 왔다. 나는 이동하는 차 안에서 눈을 붙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그의 차에 올랐다. 세상 모르고 자다 일어나보니 경북 경주에 도착해 있었다. 서울에서 378㎞ 거리. 여기서 30분만 더 달리면 당시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울산이었다. 나는 우리 집임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가 엄두가 나질 않아 일 년에 한 두 번 올까 말까 한 곳이었다. 약 다섯 시간을 달려 만난 “용한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은 ‘쇠로 된 것들을 조심할 것’ 아울러 ‘하반기부터는 운전을 조심할 것’이었다. 그 얘기 들으러 굳이 차를 끌고 왜 간 걸까. 올라오는 5시간 동안 운전 담당은 당연히 나였으리라. 수 년 전에는 부산 해운대의 한 집에 꽂혀있었다. 휴가철에 우연히 들른 그곳에서 ‘배신 수가 있으니 사람 조심하라’ ‘올해는 돈 나갈 일이 많다’는 예언처방(?)을 받았단다. 그 해에 사귀던 남자친구가 스트레스성 탈모라 치료를 받아야 하니 돈을 빌려 달라했고, 약 700만원 가량을 입금해주었다. 다음 날 피부과에서 만나기로 한 그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더란다.
그 다음해의 점괘는 ‘사람 복이 많은 배필이 옆에 있다’ 였는데, 나중에 그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애 셋 있는 가정의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처음으로 ‘참 용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상처받지 않았다. 정확히 미래를 예언하신 “용한 분”께 더욱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한번 안면을 트고 나니 전화로도 이런 저런 미래가 보이는지, 계약을 하러 갈 때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운을 좋게 만들어주는 방향과 시간 속옷의 색깔까지 지령 받는 사이가 됐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이라 여기는 심리적 경향을 ‘바넘효과’ 혹은 ‘포러효과’ 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용하신 분은 참으로 일상적인 예언을 해주고 있다. ‘한 여름에 물가를 조심하라’ ‘한 겨울 빙판길을 조심하라’ ‘사람을 너무 믿지 말라’ ‘술을 취하도록 먹지 말라’등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 겪는 상황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밥 너무 많이 먹지마, 그러다 배가 빵하고 터진다”와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말이지만, 내 인생 퍼즐에도 잘 들어맞기 때문에 귀 기울이게 된다. 뭐 저렇게 사는 것이 본인의 맘이 편하다니 남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들리겠나 싶어서 내버려두기로 했다.
최근 인문학자 김용규의 책 ‘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웅진 지식하우스)를 다시 읽었다. 파우스트도 데미안도 싯다르타도 유령이 나오든 말든 자기의 길을 나아갔고 그 시간 동안 괴로움도 행복도 만날 수 있었다는 교훈이 내 삶이랑 맞는 것 같아 줄을 그어 두었다. “인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모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거지요. 그럼으로써 그 어떤 결정론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신성한 자유를 그 자신의 권리로서 가져야만, 비로소 인간이라는 말입니다.”
조금 전 그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아리 쪽에 무슨 선녀인데 용하다고 해서 가보려고 예약 전화를 했더니 “저희는 주일엔 쉽니다.”라고 하더란다. 이상하지 않냐고 묻길래 “미래를 내려다보는 그도 절실히 의지할 곳이 필요했나 보네” 웃고 말았다. 어떻게 사는 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2016년, 어떤 방법이 되었든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존중 받아 마땅하다.
남정미 웃기는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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