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동 서울대 교수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일대일로'를 내세우며 명나라의 정화원정대를 부각시켰다. 그러나 그 이전 몽골은 이미 팍스몽골리카로 세계의 거의 모든 길을 장악했다. 저자는 지도 프로그램을 직접 익혀 팍스몽골리카를 주유한 여행가들의 여행 노선을 복원했다. 사계절 제공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김호동 지음
사계절 발행ㆍ272쪽ㆍ2만9,800원

중앙유라시아는 우리에게 익숙치 않다. 크게 3가지 이유 때문이다. 중국에 사대한 조선 때문에 관심이 확 줄었다. 현대 들어서는 소련ㆍ중공이라는 두 거대 공산국가에 막혀 접근 자체가 안됐다. 냉전은 끝났지만 북한에 막혀 섬나라처럼 살다 보니 여전히 대륙과는 떨어져있다. 그 덕에 광활한 만주벌판과 중앙아시아 초원지대가 실은 다 우리와 연결된 땅이었다는 얘기는 많지만, 정작 송-원-명-청 같은 중국식 왕조 이름은 알아도 위구르, 키타이, 티무르, 오이라트, 준가르 같은 이름엔 아무 대책이 없다.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는 이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책이다. 국내외적으로 내륙아시아사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가 썼다.

책의 포인트는 몽골사와 신청사다. 신청사는 한족 중심의 중국사 연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미국쪽 연구 흐름이다. 여진, 거란, 만주족 등이 앞선 무력으로 중국을 정복했을지는 몰라도, 야만적 유목민이라 결국 문화 수준이 높았던 정주문명국 중국에 동화됐다는 시선을 거부한다. 청나라를 단순히 명나라와 싸워 이긴 나라, 중국 역대 왕국 가운데 하나로 보지 않고 만주족 중심으로 한족을 포함한 여타 민족들을 정벌하고 지배한 제국주의 국가라고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이 나오게 된 것은 만주어 독해 덕이다. 만주어를 읽지 못하던 시절엔 한문 번역을 보고 만주어 기록도 똑 같은 내용이겠거니 했지만, 만주어 독해가 되면서 한족에겐 한문을 써서 적당히 립서비스 해주고 만주족에겐 만주어로 진짜 속내를 드러냈다는 점이 포착됐다. 명나라를 계승한 청나라가 아니라, 한족의 명나라와 달리 다민족ㆍ다언어 집단을 노련하게 분할 통치하는 제국으로서 청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당연히 만주족 때문에 서양에 당하고야 말았다는 강렬한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밑바탕에 깔린 현대 중국에게는 굉장히 껄끄러운 접근방식이거니와, 어찌 보면 동북공정 같은 작업을 그리 서두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자도 신청사를 적극 수용한다. 가령 청나라의 몽골 지배에 대해 “군주, 신민의 관계라기보다 연맹과 협력에 기초한 동반자적 관계”라면서 “중국 내지에 대한 지배 방식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달랐다”고 지적해뒀다. 이는 저자가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는 물론, 몽골어, 위구르어, 터키어, 페르시아어 등 10여 개 언어를 다룰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기존 한문 기록 외에도 14세기 라시드 앗 딘이 아랍어로 집대성한 세계사 ‘집사’ 등 다양한 원전 자료를 섭렵한 결과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케임브리지 몽골제국사’ 책임편집자인 저자의 책답게 책의 백미는 역시 몽골사 부분이다. 저자는 지도로 보는 역사책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전체 흐름을 중학생 수준에서 읽어나갈 수 있도록 편안하게 서술하면서도, 그간 잘못 알려진 역사적 상식을 일일이 바로 잡는다.

대표적으로 몽골의 우두머리를 일컫는 ‘카안’과 ‘칸’을 저자는 엄격히 구분했다. 미국에 머물고 있는 김 교수는 이메일 답변에서 “원래 카안은 몽골제국 최고 군주를 뜻하고 칸은 칭기스 칸 후예 중 카안보다 아래 있는 왕을 뜻한다”면서 “일종의 황제와 왕의 관계와 비슷한 건데 몽골제국이 무너진 뒤 이 구분이 희미해지다가 16세기 이후 사라져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굳이 나눈 건 몽골제국 당시에는 중요한 구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칭기스 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원(元)을 세웠다는 대목에도 연결된다. 저자는 “라시드 앗 딘의 집사나 다수의 몽골문 연대기 어느 곳에서도 쿠빌라이가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면서 “쿠빌라이는 원이라는 중국의 왕조가 아니라 대몽골 울루스의 최고 지배자 칸이라는 생각을 한 순간도 잊지 않았다”고 했다. ‘원’이란 명칭은 한족용 이름이었을 뿐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당연히 저자는 책에서 ‘원’이란 우리에게 친숙한 국호를 쓰는 대신 ‘카안 울루스’라는 이름을 쓴다. 울루스는 나라라는 뜻이니 카안 울루스란 모든 울루스를 아우르는 카안의 울루스, 곧 황제국임을 뜻한다. 쿠빌라이 때 몽골제국이 여러 칸국으로 갈라진 게 아니라 몽골제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루스의 연합체였다는 얘기다.

또 몽골의 후예로 나중에 청나라에 정복당한 ‘최후의 유목국가’ 준가르에 대해서도 ‘준가르 칸국’이라 쓰면 안 된다고 지적해뒀다. 저자는 “칭기스 칸의 일족이 아니어서 준가르의 왕들이 대부분 ‘칸’을 칭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준가르는 칸보다 한 단계 낮은 홍타이지(황태자)급의 나라였다.

중앙아시아 소수민족 출신으로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인 랍반 사우마는 이스라엘 성지순례길을 떠났을 뿐 아니라 기독교도라는 이유로 칸의 특사로 유럽에 파견돼 교황과 여러 군주들을 만나 기록을 남겼다. 팍스몽골리카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지만, 정작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계절 제공

최근 가장 눈길을 끌고 있는 대목을 저자에게 물었다. 일부에서 돌고 있는, 칭기스 칸 일족이 발해 유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이다. 칭기스 칸 일족이 발해 유민의 도움으로 몽골을 장악하고, 세계 지배로 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얘기는 ‘솔롱고스의 나라’로 상징되듯 몽골과 한반도가 애초부터 가까웠고, 이 때문에 몽골제국 당시 고려는 부마국의 지위를 얻었고, 몽골 계승을 자임한 청나라도 명나라 사대에만 몰두하는 조선을 안타깝게 여겼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마침 책에도 “칭기스 칸이 속한 집단이 살던 오논 강 상류지역 발굴조사에서 12세기에 이르러서는 매장 방식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흔히 매장방식 변화는 지배세력의 중대한 변화를 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발해 유민 관련설에 대해 김 교수는 “금시초문”이라면서 “중앙유라시아사와 우리와의 연관성을 연구하는 것은 좋지만 인상주의적 근거만 가지고 민족주의적, 감상주의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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