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 주희정(39)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선수다. 프로농구 최초 신인왕(1997~98시즌) 출신으로 어느덧 19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이 하나 둘 옷을 벗은 가운데 주희정은 늘 한결 같이 코트를 지키고 있다. 서울 SK에서 지난 세 시즌 동안 평균 15분 안팎으로 뛰며 체력 한계에 부딪히는 듯 했지만 올 시즌 삼성으로 팀을 옮긴 뒤 경기당 24분여를 소화하고 있다. 우리 나이로 불혹에 주전 포인트가드를 꿰찬 것이다.
놀라운 기록도 하나 있다. 그는 통산 3점슛 1,121개로 부문 2위에 올랐다. 주희정보다 많은 3점슛을 성공시킨 선수는 문경은(1,669개) 서울 SK 감독뿐이다. 1,000개 이상 3점슛을 터트린 7명 중 주희정을 제외한 6명은 모두 슈터 출신이다. 반면 주희정은 프로 초기 3점슛을 거의 시도하지 않았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문경은 감독은 주희정을 두고 “당시 ‘X맨’이었다”고 말할 정도다. 그런 주희정이 당당히 최다 3점슛 성공 부문에 두 번째로 높은 자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19일 경기 용인 STC에서 만난 주희정은 “오래 뛰다 보니까 좋은 기록들이 나온다”며 “선수로서 대기록을 달성한 것에 대해 뿌듯하고 영광스럽다”고 말했다.
노력 90%-재능 10%, 연습 때 던진 슛만 150만개
주희정은 학창 시절 3점슛 자체를 던져본 적이 없다. 그는 “중학교때는 선배들 보조만 하느라 농구가 운동인 줄도 몰랐다. 고교 때는 몸이 왜소하다 보니까 산을 타고 웨이트 트레이닝만 주구장창 했다”고 밝혔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3점슛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돌파와 미들 라인에서 던지는 슛만으로 평균 10점씩을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 3점슛의 필요성을 느꼈다. 팀 동료와 2대2 플레이를 할 때 3점슛이 안 되니 상대 수비가 따라오지 않고 패스할 길을 막기만 했다.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멀찌감치 떨어져 수비를 하기도 했다. 주희정은 “예전에 강동희 감독님이나 이상민 감독님과 매치업을 할 때 수비를 아예 자유투 라인에 서서 할 정도였다”며 “그냥 ‘X맨’이 아니라 반쪽 선수였다”고 돌아봤다.
자극을 받은 그는 프로 4년차를 맞은 2010~11시즌부터 변화를 줬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3점슛 연습을 경기 당일만 빼고 매일 저녁 500개씩 던졌다. 그는 “지금까지 따지면 150만개는 던진 것 같다”고 했다. 단순히 개수를 채우는 것이 아닌 슈팅 하나 하나에 실전 상황을 가정하고 슛을 했다. 주희정은 “하늘은 공평하다”며 “그 때 3점슛까지 잘 던졌으면 최고 가드가 되지 않았을까. 노력을 많이 하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코트의 철인, 최초 1,000경기를 바라보다
주희정은 기록의 사나이다. 출전하는 경기마다 기록을 연일 새롭게 쓴다. 21일 현재 그가 보유한 966경기 출전, 5,276어시스트, 1,476스틸은 불멸의 기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욕심을 내는 부문은 1,000경기 출전이다. 부상 없이 시즌을 마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또 다시 계약을 하면 내년 시즌에는 달성할 수 있다. 지금 기량이라면 재계약은 청신호다.
주희정은 “목표는 1,000경기 출전이 맞지만 기록보다는 현재 선수로서 주어진 시간을 재미 있게 보내려고 한다”며 “기록에 대한 영광은 은퇴 후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다. 일단 이번 시즌 팀 성적에 주력하고 플레이오프 축제를 만끽하고 싶다. 삼성 구단과 이상민 감독님이 마지막 불꽃을 태울 수 있는 기회를 줘 감사하다. 팀이 챔피언 결정전까지 오를 수 있도록 하는 게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인미답의 1,000경기를 노릴 수 있는 원동력은 꾸준한 자기 관리다. 19시즌을 뛰는 동안 큰 부상 없이 매년 풀타임 가깝게 뛰었다. 가장 많이 결장한 시즌은 삼성 시절이던 2003~04시즌 목을 다쳐 4경기에 빠진 게 전부다. 주희정은 “독한 면도 있고 운도 많이 따랐다”며 “양쪽 무릎, 어깨 등을 수술했는데 모두 비시즌때 했다. 시즌 중 가장 큰 부상은 안양 KT&G(현 안양 KGC인삼공사) 시절 무릎 반월판 연골이 찢어져 4주 진단이 나왔는데 1주일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바로 경기를 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운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KBL리그를 향해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주희정은 “나는 이제 지나간 선수”라며 “통산 500경기를 뛴 선수는 얼마 안 된다. 어린 친구들이 앞으로 100경기, 200경기를 뛸 텐데 최초가 아닐지라도 기록을 달성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서 축하를 해주면 선수에게는 분명히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수는 더욱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더 높은 곳을 보고 달려간다”고 강조했다.
용인=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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