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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두 번 우는 예비후보들 "일단 명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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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두 번 우는 예비후보들 "일단 명함부터…"

입력
2016.01.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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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구 증발’ 두 번 우는 예비후보

서울 양천 갑 지역구에 가보니

“손발 묶인 상태서 불공정 경쟁

발품으로 커버하는 수밖에 없죠”

서울 양천갑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기재 후보가 한파가 몰아친 21일 오전 양천구 오목교역 입구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맨손으로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고 있다. 선거법상 예비후보는 지하철 역사 안에 들어가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서울 양천갑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기재 후보가 한파가 몰아친 21일 오전 양천구 오목교역 입구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맨손으로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고 있다. 선거법상 예비후보는 지하철 역사 안에 들어가서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서울에 올 들어 첫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지난 19일. 최저 체감온도 영하 19도의 강추위 속에 빨간색 모자와 점퍼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한 남성이 양천구 목3동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명함을 건넸다. 1시간30분가량 시장과 인근 상가를 돌아다니며 돌린 명함은 300여장. 인사하고 마주친 사람은 족히 600명은 넘어 보였다.

주인공은 이번 총선에 서울 양천갑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이기재(47) 전 제주특별자치도 서울본부장. 원희룡 제주지사의 국회 보좌관 출신인 그는 원 지사가 3선을 한 이 지역구에서 초선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싸워야 하는 것은 동장군만은 아니다. 현역 의원에 비해 현저히 불리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하는 선거 환경이 그의 앞길을 막고 있다. 이날 선거운동 도중 만난 그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마이크 한 번 잡을 수도 없는 이런 불공정 경쟁이 어디 있냐”고 호소했다.

지난 13일 신정7동 주민센터 ‘동 업무보고회’에서 있었던 일도 정치신인이 흔히 겪는 설움 중 하나다. 참석자 70여명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로 생각한 이 후보는 행사 시작 전 강당에 들어가 미리 와 있던 주민들에게 악수하고 인사를 청했다. 그런데 갑자기 구청직원인 듯한 사람이 나타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며 막았다. 예비후보는 마이크를 잡거나 유세차량을 이용하면 공직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결국 이 후보는 행사장 입구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돌리며 일일이 악수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 지역 현역인 새누리당 길정우 의원과 최근 출사표를 던진 당 대변인인 신의진 의원 등은 행사장에 당당하게 들어가 인사했다.

최근까지도 새누리당 예비후보는 지역구의 당원명부도 받을 수 없었다. 당원 명부에는 당원 이름, 주민등록번호, 직업, 주소지, 연락처 등이 있어 경선 준비에 필수적이지만 지역 당협위원장이나 의원만 열람이 가능했다. 새누리당은 당원 명부의 전수조사를 거쳐 ‘유령 당원’을 삭제한 명부를 공천 신청자에게 공개하기로 했지만, 만시지탄이라는 게 예비후보들의 목소리다.

이뿐이 아니다. 현역 의원은 의정보고서를 전 구민에게 보낼 수 있고 우체국이 발송비도 80% 할인해준다. 반면 예비후보는 지역구민의 10%에게만 발송할 수 있고 발송비 할인도 없다. 이 같은 제약들 때문에 현역 의원들은 대부분 예비후보 등록을 최대한 미루며 ‘현역 프리미엄’을 누린다. 이 후보는 “당 지도부는 상향식 공천과 오픈 프라이머리를 강조하지만 예비후보들은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경쟁을 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예비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론조사로 공천을 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 후보가 현역 의원과의 조건 차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의 말마따나 “발자국 숫자로 커버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대한(大寒)을 하루 앞둔 20일 새벽에 다시 만난 그는 살을 에는 칼바람을 뚫고 목동 갈산초등학교 앞 삼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1시간 넘게 출근 차량을 향해 인사를 했다.

“이번에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들 싹 바꿔야 돼요. 열심히 하시는 것 몇 달 전부터 지켜보고 있어요. 그렇게 뛰면 되지 않겠어요.” 아침 식사를 하러 찾은 해장국 집에서 한 중년 여성이 응원 인사를 건넸다. 아침 댓바람에 쏘다닌 지 2시간 만에 얻은 첫 유권자 반응에 이 후보의 기분이 다시 고무됐다. 그는 “당선되면 예비후보를 지나치게 차별하는 선거법 개정안부터 발의할 것”이라며 “예비후보가 현역 의원들과 공평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의원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ankookilbo.com

선거구 획정은 언제나… 발길 바빠도 속은 숯덩이

전북 김제 완주 지역구에 가보니

설연휴 홍보물 발송하고 싶지만

주소 명단 제공 안돼 발만 동동

3면/ 무주진안장수에서 뛰고 있는 김제완주 예비후보 유희태. 한국일보
3면/ 무주진안장수에서 뛰고 있는 김제완주 예비후보 유희태. 한국일보

전북 김제ㆍ완주 지역구는 ‘깜깜이’ 선거구다. 이 곳은 선거구 재획정 여부에 따라 임실이 추가되거나 김제와 완주가 분리될 수 있다. 후자의 경우 김제는 부안과 합쳐지고, 완주는 인근의 무주ㆍ진안ㆍ장수(무진장)ㆍ임실 중 무진장과 통합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김제ㆍ완주 예비후보들이 무진장ㆍ임실로 넘어가 홍보전을 펴고, 반대로 무진장ㆍ임실 지역 예비후보가 김제ㆍ완주로 넘어와 명함을 돌리는 등 예비후보는 물론 유권자도 선거관리를 하는 선관위도 매우 혼란스러운 선거구로 꼽힌다.

지난 20일 오전 완주군 운주면사무소에 열린 군수 신년 하례식장 풍경은 이런 사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영하 10도의 강추위에 면사무소를 찾은 주민들은 90도로 허리를 연신 꺾어대는 장정들 사이를 지나면서 모두 3장의 명함을 받았다. 20대 총선 예비후보와 선거사무원들이 건넨 홍보명함이다. 한 주민은 “명함에 출마지역 표시가 안 돼 있어 ‘어디로 나오냐’고 물었는데, 모두들 씨익 웃고 말더라”고 했다. 실제 명함에는 출마지역 대신 ‘무진장 좋은 우리동네’ ‘일혀라 000’ ‘풍요롭고 공정한 국가 건설’과 같은 두루뭉술한 표현만 들어 있다.

맨 앞에서 인사하던 김정호 후보는 “한 번에 100여명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다”며 추위도 잊은 채 명함을 돌렸고, 1층 현관의 유희태 후보도 “이렇게 돌려도 선거구가 넓어 하루 1,000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며 바삐 움직였다. 김 후보와 유 후보는 김제ㆍ완주 지역 예비후보다. 반면 2층 행사장 입구에서는 이름이 적힌 조끼도 입지 않은 채 한 후보가 “안호영 변호사입니다”라는 말만 침이 마르도록 반복했다. 안 후보는 무진장ㆍ임실 지역에 등록한 예비후보이다. 안 후보는 “어떻게 될지 몰라 일단 명함 먼저 돌리는 중”이라며 “지금은 남의 지역이라 예의상 조끼는 입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ㆍ유 후보는 안 후보가 내심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입밖에 불만을 내지는 않았다. 자신들도 언제든 무진장으로 넘어가 홍보를 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실제 유 후보는 이날 행사 직후 70㎞ 떨어진 진안 노인복지관으로 달려가 명함을 돌렸다.

선거구 획정 지연이 예비후보의 발목을 잡는 사례는 이 뿐이 아니다. 예비후보는 최대 홍보행사인 출판기념회에도 등록된 지역구 주민만 초청해야 했다. 유 후보는 “선거법 해석상 출판기념회는 ‘통상 범위의 지인’을 초청해 축하를 받는 자리로 제한됐다”며 “선거구 획정 지연 때문에 등록지역이 아닌 무진장의 지인은 초청할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홍보물 발송에도 애를 먹고 있다. 가령 김제ㆍ완주에 등록한 유 후보가 무진장 지역에 홍보물을 발송하려고 해도 선관위가 선거구 미획정을 이유로 가구 주소와 명단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 후보는 “홍보물이 설 연휴 사나흘 전에는 배송돼야 가족들이 모였을 때 입에 한번이라도 오를 수 있다”며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이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예비후보 홍보기간은 총 120일이다. 그 사이 40일이 허송세월 지나가버렸지만, 지금까지 여야의 선거구 획정 협상을 되돌아보면 한숨은 더 커진다. 불공정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 후보는 “선거구가 넓기도 넓지만 선거구 획정이 안 된 상황에서 공격적으로 인사를 다닐 수도 없어 속이 탄다”고 했다.

글ㆍ사진 완주ㆍ진안=정민승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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