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서명운동 여론전도 영향…더민주 입장 선회에 정부도 얼떨떨
북한인권법 사실상 합의점 찾아… 서비스법도 이번 주말 타결 가능성
파견법은 이견 커 협상 진척 없어
21일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의 기업활력제고법(원샷법) 수용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그것도 협상이 아닌 새누리당의 안을 사실상 100% 수용하는 이례적인 방식이었다. 더민주는 그간 원샷법이 대기업 특혜라며 10대 그룹에는 적용하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적용 대상에 제한을 두지 않고 모든 기업이 적용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새누리당 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조차 전혀 기대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야당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더민주, 전격 수용 배경은
야당은 전날까지도 원샷법을 받아들이기 위한 조건으로 적용 대상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대기업에게 특혜가 가서는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더민주는 처음에는 원샷법의 적용 제외 대상을 61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정했다. 이후 일부 대기업으로 한정하겠다는 협상안을 한 차례 제시했고, 최종적으로 대기업 오너의 편법 상속과 경제력 집중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버텼다.
때문에 더민주가 이날 모든 기업이 적용 받도록 하겠다고 결정한 것은 다소 의외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야당은 지난해 12월 여야가 원샷법과 함께 처리키로 합의한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도 “꼭 처리하지 않아도 된다”며 양보했다.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도 더민주는 일부 문구 수정만을 요구하면서 새누리당이 이를 받아들이기로 해 사실상 합의점을 찾았다. 그 동안 더민주는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이 법에 반대해왔다.
더민주의 이 같은 변화 배경은 복합적이다. 먼저 4월 총선에서 여당의 프레임에 걸려들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더민주 핵심 관계자는 “정부와 새누리당이 여러 쟁점 법안과 선거구 획정안, 게다가 국회선진화법까지 실타래를 풀기보다 갈수록 상황을 복잡하게 만드는 데는 분명 의도가 있다”며 “총선을 앞두고 모든 상황을 야당 탓으로 돌릴 게 뻔해 이에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야당심판론’카드로 공격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맞대응 했다는 것이다. 쟁점 법안 중 원샷법을 먼저 수용한 것은 재야학자들조차 법안에 찬성하는데다, 재계가 나서 ‘민생살리기 입법 촉구’서명운동으로 여론전에 나선 점이 감안됐다. 내부적으론 이종걸 원내대표, 이목희 정책위의장, 홍영표 산업통상자원위 간사가 공감대를 만들어 냈다.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한 ‘지원사격’도 이유로 꼽힌다. 정 의장은 새누리당이 쟁점 법안, 선거구 획정, 국회선진화법 등의 직권 상정을 요구하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여야 합의가 우선이란 원칙을 내세워 버티고 있다. 더민주의 다른 관계자는 “정 의장이 현재 스탠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법안 협상 숨통 트일 듯
야당의 원샷법 전격 수용으로 꽉 막혀 있던 여야의 쟁점법안 협상에는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물론 원샷법에 이어 타결될‘2번 타자’로 꼽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만 해도 여야 입장 차는 여전하다. 하지만 여야가 서로 한발씩 물러나 협상안을 제시하고 있어 이르면 이번 주말 타결 가능성도 점쳐진다. 더민주는 보건의료 부문의 영리화ㆍ민영화를 막을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면 서비스법의 정의에서 ‘보건의료’를 빼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서비스법이 아닌 보건의료법, 약사법 등 다른 법안들에 영리병원 견제 조항을 넣을 수 있다는 수정안까지 제의한 상태다. 여야는 23일 다시 만나기로 하면서 분위기는 일단 접점 찾기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다만 서비스법과 함께 처리하기로 한 ‘사회적 경제기본법’의 경우 여야가 아직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민주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 설치를 조건으로 제시했으나, 새누리당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노동개혁 관련 4개 법안 중 파견법에 대해서도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해 협상에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의 경우에도 야당은 국가정보원에 정보수집권을 주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해서도 공전을 거듭했다. 새누리당은 지역구 의석 수를 253석으로 늘리고, 비례대표 의석 수를 그 만큼 줄이자고 했지만 더민주는 정당득표율이 5%를 넘으면 비례대표 4석을 보장해 주는 ‘최소의석안’을 고수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소의석안을 검토해 달라고 했고, 이목희 정책위의장은 정당후원금 배분방식을 의석수가 아닌 득표율로 변경하는 것을 제안했다”며 “검토는 해보겠지만 획기적 변화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송은미기자 mys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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